북유럽 여행기<5> 최병원의 <청산별곡>-실자라인으로 헬싱키로 가는 여정
최병원 | 여행가
칼 스타드, 스톡홀름, 실자라인, 헬싱키 여정
015. 7. 29~30
<조용한 도시 칼 스타드>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도착한 칼 스타드는 매우 한적하지만 짜임새 있고, 쇼핑센터가 잘 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중국식으로 저녁을 들고 주변 운하와 호수를 산책한 일행들은 호텔 로비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동안 서로 서먹하게 지냈던 다른 일행들과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들 중년을 넘기고 생활에 여유를 가지고 있는 좋은 분들이었다.
새벽녘에 시내를 지나 어제의 운하와 호수를 이룬 클라르강 그리고 13개의 아치교를 다녀왔다. 유럽의 문화는 어디를 가나 운하와 호수 그리고 잘 짜인 도심과 정원들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곳 칼 스타드는 스톡홀름까지 고속열차가 왕복하는데 역사의 모습도 시골스런 단아한 모습이어서 좋다. 플랫폼에서 바라보는 레일의 평행선 모양이 아침 여명에 빛난다.
칼 스타드는 클라르 강어귀의 베네른 호 북쪽 기슭과 팅발라 섬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곳에서 열린 의회 모임인 팅(ting)을 따서 팅발라로 불렀으나, 1584년 자치 시로 칙허를 내린 카를 9세를 기념하여 개칭되었다.
1645년에 대성당이 세워졌고 1779년 주도가 되었다. 1905년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통합문제를 결말짓는 협상이 열렸다. 1865년 화재로 거의 전소되고 난 후, 넓은 대로와 큰 공원을 갖춘 근대적 도시로 재건되었다. 이전 건물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클라르 강에 놓인 동교(1761~70)에는 13개의 인상적인 아치가 있다. 박물관에는 베름란드에서 수집된 미술품과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970년 예테보리대학과 자매결연 한 카를스타드대학이 설립되었다.
산업은 주로 임산물과 중장비 기계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예테보리와 북해를 거쳐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어 수출입 무역량이 많다. 인구는 100,000명 정도라고 한다.
<칼 스타드 클라르강 아치교와 운하, 도심 건물>
칼 스타드를 출발한 일행들은 또 다시 숲과 대평원, 호수를 지나 스톡홀름으로 달린다. 중간에 커다란 펄프 공장을 만났는데 생산량이 대단하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숲은 무겁고 어두운 풍광들이 지나쳐 모두들 잠속으로 빠져든다. 모니터에는 스웨덴 가수 아바에 대한 영화 ‘맘마미아’가 상영되고 있는데 대학 시절 아바(ABBA)에 빠져 자주 듣던 생각이 난다. 아바의 고향 스웨덴은 호수의 나라이고 철강제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전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행 기차를 타고 달리며 보았던 스웨덴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4시간 정도를 달려 스톡홀름 주변에 당도했는데 도로가 무척 막혔다. 특히 다리를 건너며 도심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 혼잡했다.
카크네스 타워로 향하는 길목에서 왕궁 근위대 행진과 마주 했다. 파란 제복을 입은 기마대 행진이 아름다운 왕궁 다리와 어울려 화려하고 멋있다. 스톡홀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물 위에 있기 때문에 ‘물 위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이 늘 따라다닌다. 발틱해와 마라렌(Malaren) 호수가 만나는 곳에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혹적인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도시 주변은 역사와 성, 아름다운 마을로 가득하며 시청사와 바사 박물관, 감라스탄이 주요 관광 코스이다.
카크네스 타워 전망대는 방송 중계 탑으로 건립되었지만 지금은 상층부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스톡홀름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레스토랑에서의 품위 있는 식사를 마치고 바사 박물관을 관람했다. 바사 호는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1625년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처녀 항해할 때 침몰한 배이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 해 주변 제국 건설에 분주하여 막강한 해군력을 만들기 위해 건립한 전함인데 바사 호는 길이 69m, 높이 48.8m, 탑승 가능 인원 450명, 탑재 대포 64문의 거대한 배로 제작되었다.
국내외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거행하였는데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축포를 쏘며 배의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 침몰했다. 배에 승선했던 150명 중 30명이 익사했다. 침몰한 바사 호는 1958년 해양 고고학자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만인 1961년 인양되었고, 인양된 배에서 25개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네이버 지식 백과 인용)
비가 내리는 도심을 지나 시청사로 향했다. 예전 스톡홀름에 왔을 때 해변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시청사인데 노벨상 수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웨덴 인구는 1,000만 명이고 남한의 5배의 국토를 가졌는데 스톡홀름에는 200만 명이 산다고 한다. 멜라겐 호수 건너편 시청사는 1911년 스웨덴의 유명 건축가 라그나 외스트베르그가 최고의 목공들을 고용해서 장식을 하고 가구를 제작해 12년 만에 완공했다.
시청사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축하 만찬과 콘서트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이용된다.
시청사 내부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린다. 역시 북유럽은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름 낀 시커먼 호수가 무척 을씨년스럽다. 감라스탄 구시가지는 시청사 인근에 있는데 먼저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눈에 띈다.
1279년에 건축되었으며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나 중요 행사가 열린다. 원래는 성 니콜라스 성당이었으나 1527년 종교 개혁을 주도한 교회로서 스웨덴의 국교인 루터교 교회로 사용한다.
스토르토에트 광장에는 예전 사용하던 우물과 학술원, 노벨 박물관, 오벨리스크 등의 16세기 건물들이 많다. 큰 우물이 있는 광장은 스톡홀름 대학살의 현장인데 1520년 11월 8~9일에 있었던 대학살은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스웨덴의 구스타브 왕과 귀족 등 82명을 이틀 동안 교수형 또는 우물에 던져 처형한 사건이다.
당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은 덴마크 주도하에 칼마르 동맹을 맺었는데 스웨덴이 동맹을 깨려하자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때 덴마크에 유학을 가 있던 구스타브는 스웨덴으로 탈출하여 나중에 스웨덴을 몰아내게 되고 칼마르 동맹이 깨어진다.
감라스탄 상점에서 일행들은 스웨덴 펄프로 만든 행주를 많이 샀는데 품질이 우수하여 선물용으로 좋다고 한다. 아울러 자이리톨 껌도 품귀를 빚었다고 한다. 관광을 마치고 일행들은 서둘러 실자라인을 타기 위하여 부두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합실에는 그야말로 전 세계 모든 인종들이 배를 타기 위하여 줄을 서있는 모습으로 복잡하고 시끄럽다.
실자라인은 발틱해를 운항하는 가장 크고 화려한 유람선으로 길이가 193mm, 폭 29.5m, 승객수 2,500명, 방이 740개, 300대의 승용차와 50대의 버스를 실을 수 있다. 많은 부대시설을 갖춘 특급 크루즈의 시설을 갖췄는데 특히 저녁 만찬의 뷔페식은 근사했다. 와인과 맥주를 먹으며 모처럼 일행들은 풍족한 식사를 즐겼다.
스웨덴의 스뫼르고스보르드는 여러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 놓고 원하는 만큼 덜어 먹는 전통적인 식사 방법을 말한다. 옛날 바이킹들은 한 번 출항하면 오랫동안 배 안에서 생활하며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고향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 신선한 음식을 가득 차려 놓고 덜어 먹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스뫼르고스보르드가 된 것이다. 요즘 뷔페식의 원조라 생각된다.
전통적인 스뫼르고스보르드는 차갑고 뜨거운 음식이 포함되는데 일반적으로 청어, 연어, 장어 등의 차가운 생선 요리로 시작해서 다른 차가운 음식을 먹고, 스웨덴식 미트볼인 세블라르와 또 다른 스웨덴 별식인 얀손의 유혹(감자와 안초비 등을 넣고 오븐에 구운 것) 등과 같은 뜨거운 음식을 먹는다. 식사 후 갑판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며 북유럽 여행을 정리한다. 비록 날씨가 흐려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달빛을 맞지는 못하지만 대형 크루즈에서의 하룻밤은 근사하고 화려했다.
스웨덴 해변을 달리던 실자라인은 핀란드의 항구에 잠시 머문 후 계속하여 16시간을 달린다. 일출을 보기위해 갑판에 올랐는데 여명이 나타나고 있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 어려울 듯 했다. 이제나 저제나 일출을 기다리는데 일행들 몇 분이 갑판에 서성거리며 하늘에 핀 오색구름의 향연에 함께 한다.
2015년 7월 30일 오전 5시 20분 드디어 동편 수평선에 해가 떴다. 핀란드는 노르웨이, 스웨덴과 1시간 차이가 나는데 상당히 이른 시간에 해가 뜨는 셈이다. 해가 뜨는 중에 반대편에 무지개가 생겨 멋을 더 했다.
해가 뜨면서 하늘이 맑아지고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이내 좁은 해협을 지나고 실자라인은 헬싱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면서 부두에 정박한다. 하얗고 붉은 지붕들이 시야에 나타나는데 중세의 건물들이 무척이나 색감을 돋보이게 하면서 넓은 시가지에 안정감을 준다.
헬싱키는 핀란드의 수도로 인구가 520,000명이다. 바다에 두러 싸여 있는 발틱의 땅인데 60여 개의 박물관,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의 낙원이다. 세계적으로 유병한 건축물과 디자인을 볼 수 있으며 시벨리우스의 고향이기도하다. 원로원 광장에는 대성당이 우뚝하고 건너편 언덕에 우스펜스키 사원이 하늘을 찌르는데 부두에는 쇄빙선이 이 지역 겨울을 상징한다. 마켓 광장에는 각종 과일과 해물을 파는데 관광 인파로 가득하다.
암석교회에 들른 후 시벨리우스 공원을 산책하고 헬싱키 역으로 향했다. 헬싱키 역에서 알레그로(ALLEGRO) 특급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다. 열차 안에서의 두 번에 걸친 여권 검사와 여러 번 쉬어가며 시속 130~140km를 유지하는 러시아 기차의 답답함에 무척이나 무료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러시아와 핀란드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함에 놀란다.
3시간을 달린 열차는 오후 6시 30분쯤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 도착하였다. 역 앞 풍경은 교통 체증과 비까지 내려 조금은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이다. 네바 강 하구에 있으며, 그 델타지대의 형성된 자연 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발트 해의 핀란드 만에 접해 있다.
예전에는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1924년–1991년)로 불리기도 했다. 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죽자 1924년 1월 26일 그를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불리게 되었고, 1991년 9월 6일 다시 옛 이름을 되찾았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설립한 이 도시는 1713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2010년 기준으로 5백만 명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에 이은 러시아의 대공업도시로 복잡한 정밀기계의 제조가 특색이다. 선박, 터빈, 발전기, 디젤기관, 트랙터, 공작기, 계기류(計器類), 각종 장치의 제조공장이 있고, 화학공업(고무제품·과린산비료·화학합성 자재·염료·도료·향료), 섬유공업, 인쇄업 등도 성하다.
다수의 학술 연구기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있어 학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도심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레닌그라드 주와는 분리된 연방시를 이루고 있으나, 레닌그라드 주의 행정 중심 도시로 되어 있다.
18세기 초반부터는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851년엔 러시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기도 했다.(모스크바와 연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교통이 편리해짐으로써 이 도시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각종 러시아의 혁명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중심이 되었다.(피의 일요일, 3월 혁명, 11월 혁명) 또 세계 2차 대전 당시 1941년 8월부터 29개월 동안 독일군에 포위당한 상태로 40만 명이 아사(餓死)당하면서까지 지켜낸 도시라고 하여 ‘영웅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정>
7월 29일 (수) 칼 스타드(08:00) – 스톡홀름(4시간 소요) 12:00 도착
카크네스 타워 전망대 12:35
북방 미술관, 바사호 박물관 13:10
스톡홀름 시청사 14:45
감라스탄 구시가지 15:15
항구로 이동하여 실자라인 탑승 16:45
실자라인 숙박
7월 30일 (목) 실자라인 헬싱키 도착(09:30)
헬싱키 : 원로원 광장과 대성당
마켓 광장
우스펜스키 사원
시벨리우스 공원
암석 교회
헬싱키 역(15:00)
초고속열차 알레그로 탑승
상트페테르부르크(17:30) 시가지-공항(23:00)-인천 공항(14:20)-대전(17:15)
<에필로그>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일이 발생하면 사리 판단을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긍정과 부정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결심한다. 학습과 경험은 인간에게 분별력을 키우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난관이나 문제에 부딪히면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여행은 계절과 날씨 그리고 환경이나 일정의 변화로 여러 가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행은 적응이고 경험이고 다가섬이다. 오히려 기대와 설렘은 여행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실망과 불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행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순간 모든 일정들이 아쉬움과 불만으로 가득하여 즐거워야 할 여행이 불편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2005년 11월 잡지 마이라이프 필자 글 칼럼에서)
이번 북유럽 여행 내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큰 불평 없이 상황에 잘 대처했던 우리 일행 김 박사 부부의 사려 깊은 행동에 큰 박수를 보낸다. 또한 일행들의 여정을 부드럽게 유지하도록 센스를 발휘한 최 사장님 부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이고 역사의 뒤안길을 비춰 볼 수 있어 좋다. 대자연의 신비가 한 눈에 보이는 피오르드의 장엄함과 바이킹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 노력한 흔적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예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을 들었던 북유럽 복지 천국의 4개국! 그들은 어떻게 복지국가를 이뤘는지 실제로 보고 싶었다. 황량한 대지와 거친 환경을 극복하고 나라의 틀을 제대로 세우려 애쓴 선지자들의 행동도 보았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게도 북유럽 국가들의 외교와 경제 그리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테마였다. 앙숙이었던 네 나라가 어떻게 번영과 결속을 다졌는지 배울 필요가 있다. 적대 관계를 풀고 서로 상생(WIN-WIN)하여 현명하게 각국의 이익을 추구한 모습들이 꽉 막혀 체증 현상을 빚는 한반도 상황을 푸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인도 등은 자기들 경제 성장을 위하여 이웃 나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 틈새에 끼어 정치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불쌍하다. 문득 KBS 명견만리 광복 70년 특집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현재를 통렬히 갈파했는데 그 중 동북아시아 세 곳의 도약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에서 우리만이 소외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의견에 가슴이 아팠다. 중국 훈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나주, 선봉지역의 미래를 향한 발전 방안들이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문제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니 아쉽기 만하다.
강원도지사와 부산시장은 북한과 경제적인 교류가 절실하다고 외친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 3곳의 발전에 우리가 동참해야 한다고 절실하게 말한다. 멀리 북유럽의 쉽지 않은 여행을 다녀오면서 자연과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르고, 기후가 다르고, 먹는 것이 다름에 놀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가이드는 현지에서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러시아의 현재를 알려 주며 동북아의 한국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환경과 자연 재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선진국이 된 4개국의 모습이 부럽다. 이번 여행은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볼 수 있었고, 북유럽의 4개국이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었는지를 느끼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북한과의 통일이 우선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교류가 먼저 선행이 된 후에 서서히 이루어져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행에서 얻는 보람은 ‘우물 안 개구리’ 즉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알고 있는 모순을 깨달으며 현명하게 세계의 정보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레닌 동상이 다 헐려서 없어졌을 것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준 가이드의 송곳 같은 일침이 머리에 꽂힌다.
올바르게 알고 정확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행을 통해서 현지인들의 삶과 가치관을 만난다면 무엇을 긍정하고 부정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밀알 같은 경험을 했다면 이번 여행은 분명 보람 있는 여정이다. 함께했던 일행들이 이심전심(以心傳心),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보여준 여정은 서로를 배려하는 여행의 초심자로 돌아간 듯하여 흐뭇하다.
북유럽의 피오르드와 자연 그리고 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었음에 이번 여행이 보람이 크다. 함께 했던 일행들과의 나눈 대화들도 모두 소중하고 기쁨이 되었음에 큰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함께했던 모두에게 진심어린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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