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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

레이디타임즈 2013. 3. 25. 17:54

정경자의 포토포엠


반추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태초에는
형태도 없이
어느 한 곳에 머물 수도 없는
미세한 먼지였다
 
인고의 세월이 지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이
여리디 여린 작은 이끼로
생명을 부여 받았다
 
햇살 한 조각
이슬 두어 방울
바람 한 점에도
온 몸을 내 주었다
 
이름 모를 잡초로 자라
어느 강가에 서성이다
해 기울임에 따라
노래하는 갈대에 젖어 들었다
 
갈대 줄기 불씨 만들기 좋아
초가 삼 칸 아궁이에
차가운 재가 되어
부드러운 흙과 친구가 되었다
흙속에서 살던 나는
이른 봄 날
뜰 앞 단풍나무 아래
영양제가 되었다
 
봄비 곱게 내리던 날
빗방울 따라
나무 뿌리와
한 몸이 되었다
 
꿈틀 거리는 생명력으로
하늘을 꿈꾸며
이 가지 저 가지 따라
작고 여린 얼굴을 내 밀었다
 
아기 손을 닮는
소원을 빌며
온갖 열정을 다하여
붉게 붉게 물들었다
 
내 몸 하나 불살라
고단하고 복된
생을 마침에
뿌듯하고 장하다

 

오늘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내일의 꿈을 꾸어본다
 
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작가노트-2012, 11, 3.(토) 우연히 발에 밟힌 낙엽, 단풍 나뭇잎의 윤회가 궁금했다. 아기 손을 닮은 단풍나무 잎은 다음 생은 노란 은행잎이 되는 꿈을 꾸고 있을까? 내가 단풍 나뭇잎이라면...부모님의 몸을 받은 이생이 다음 생에는 또 어떤 부모의 몸을 빌까. 과거 7생의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려면 조상의 음덕을 기리라고 했던가. 그 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이 다음 생에도 그 나무의 잎으로 피어나 살다 가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무의 자라는 위치가 어디이냐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산속 나무인 경우는 확률이 매우 높겠고 물가의 나무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하듯 우리네 사람들이 다음 생에도 또 지금의 부모와 자식으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경자 시인-유성구 부구청장(2010년 지방이사관)으로 40여년 공직을 마감하고 틈틈히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느낌들이 녹아있는 시들을 발표해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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