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10

자신감을 테스트 하라

오래전 부부가 함께 모이는 단체에 취재를 간적이 있다. 평소 자주 얼굴을 보아왔던 남성이 나를 발견하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느냐?’고 반긴다. 그 반김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저도 궁금했었는데 여기서 뵙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라고 그에게 생각 없이 인사치레를 했다. 그리고 ‘사모님은 왜 참석 안하셨나요?’라고 물었더니 옆에 서 있던 여성을 가리키며 ‘안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가 소개하는 여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난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나를 쳐다보는 싸늘한 그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었다. 순간, ‘내가 무슨 실수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임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싸늘했던 시선은 한참 후에까지도 소가 되새김질하 듯 자꾸 내 맘을 헤집었다. 그 ..

어느날 문득... 2012.12.21

은행나무를 겁주는 사람

환경청이 주관하는 팸투어에 동행 취재를 하게 되었다. 취재도 취재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부여의 백마강에서 황포돗배를 타고 고란사로 가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어 부푼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나를 선두로 45인승 버스에는 하나 둘씩 동행할 사람들이 올라탔다. 모두가 낯선 얼굴들이어서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펄쩍 뛰어 오를 만큼 반가운 얼굴이 버스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바로 신혼시절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처럼 이루어지는 만남은 영화 속에서나 펼쳐지는 광경이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리워지는 얼굴 중엔 목사님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어찌나 반갑던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게는 친정아버지처럼 자상한 모습으로 막내딸 고자질하듯 고하는 얘기들을..

어느날 문득... 2012.12.17

참새 날개로 날기

새와 곤충들은 날개의 크기에 따라 비행하는 형태에 차이가 있다. 독수리나 매처럼 제법 큰 날개를 가진 새들은 비행할 때 날개 짓의 횟수가 적다. 반면, 참새나 벌새 등 날개가 작은 새들은 큰 새들에 비해 더 많은 날개 짓을 해야 비행할 수 있다. 새보다 더 작은 잠자리와 같은 곤충들은 1초에도 수백 번을 날개 짓을 해야 날 수 있다. 날개 짓을 많이 해야 하는 작은 새나 곤충은 날개 짓을 적게 하는 큰 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증가하고,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정지비행이나 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곤충에겐 많은 날개 짓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도 크든 작든 날개를 지닌 존재여야 한다. 어떤 이는 독수리의 날개로, 어떤 이는 참새의 날개로 또 다른 이는 잠자리의 날개로 주어진 삶..

어느날 문득... 2012.12.17

안녕하세요 9층~

작은 딸에 이어 남편도 출근을 한 후 흐트러진 집안을 대충 정돈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13층에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에 누가 탑승하는지 내가 서 있는 9층까지 소란함이 전해진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9층”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처음보는 꼬마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 13층” 얼떨결에 나도 꼬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떨결’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탑승을 해 보았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들 동안 그 꼬마의 인사만큼 신선한 인사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정말 신선했다. 그 날은 일을 하면서도 짬짬히 그 꼬마의 ‘안녕하세요 9층’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리..

어느날 문득... 2012.10.06

영혼의 온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히딩크는 뜨거운 피를 가진 감독이고 본 프레레는 차가운 피를 가진 감독이라고 말한다. 축구경기를 치루면서도 두 감독의 행동을 비교해도 뜨거움과 차가움의 차이는 쉽게 감지된다고 한다. 뜨거운 피를 가진 히딩크 감독은 골이 들어갔을 때 정열적인 어퍼컷으로 한껏 기쁨을 발산한다. 반면 차가운 피를 가진 본프레레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볍게 박수를 치며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언론을 상대할 때 맘에 안 드는 말은 즉각 반응하며 화도 내곤 한다. 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은 맘에 안 드는 말은 그냥 침묵으로 묵살한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과 본 프레레 감독을 비교해 말하던 뜨거움과 차가움의 차이를 영혼의 온도라고 할 수 없다. 또한 태도로 판단되는 차가움과 뜨거움은 단지..

어느날 문득... 2012.10.06

가면놀이는 끝났다

닥종이 공예가 김영희 작가가 몇 년 전, 대전에서 전시를 연 적이 있다. 란 그녀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녀를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화랑으로 달려갔다. 작품들을 둘러보다 유독 내 마음을 당기는 인형이 있었다. 제목이 이다. 앞니가 벌어진 어눌하고 시골틱한 여자가 한 손에 베르사체 패션쇼에서나 나올법한 도도하고 세련된 가면을 한 손에 벗어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인형이었다.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그 인형은 바로 나의 자화상이었다. 기자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많은 만남들 속에서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예의바른 태도를 가장한 오만함으로 ‘너는 별거 아니야’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 ..

어느날 문득... 2012.10.06

친구의 남편자랑

생각 만해도 행복한 장소와 사람이 있다면 인생을 헛되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난 참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첫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 청원군에 위치한 작은 읍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남편이 사업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가게 된 곳이 내수라는 작은 동네였다. ‘내수’란 곳은 생각만 해도 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장소였고 그 곳에서 만난 순자는 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도시생활에만 익숙했던 내게 그 곳의 첫인상은 막막함과 여유로움의 중간쯤의 감정이랄까! 이삿짐을 풀고 둥지를 튼 빌라 주변은 온통 숲과 밭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막막함은 소멸되고 여유로움에 푸근함까지 보태져 난 그 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선뜻 말을 붙여주는 어디선가 본..

어느날 문득... 2012.10.06

산책하는 여자

오전 11시의 공원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파란 잔디 위로 까만 연미복 차림의 까치만이 강종거리는 이 공원의 한적함을 난 사랑한다. 눈가의 주름을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나이.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서둘러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사내아이의 길어진 머릴 깎듯 잘 깎여진 잔디의 풀내음은 동심으로 나를 이끈다. 어린 시절, 천둥벌거숭이 되어 앞산 숲에서 숨바꼭질 참 많이도 했었다. 녹음 짙던 그 숲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었었다. 주근깨가 송송 박힌 홍시빛 꽃잎 위로 밤색 꽃술이 대롱대던 나리꽃들. 그 향기가 좋아 꽃 속에 코를 박고 숨 막히도록 향기를 맡았었다. 나리꽃의 밤색 꽃가루 때문에 바둑이 코가 된 나를 보고 배꼽 빠지게 웃던 소꿉동무들의..

어느날 문득... 2012.10.06

카르페디엠

고향 친구로부터 ‘너는 나이가 들어서도 옛날하고 똑같이 성격이 급하다며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절대 조급하게 굴지 말라’란 충고를 들었다. 내 급한 성격은 어릴 적 군인이셨던 친정아버지로 인해 형성된 성격일지 싶다. 아버지는 당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당신이 지시하신 일을 즉각 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해야 할 일이 있거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곧바로 하지 못하면 안달이 나고 만다. 처음 이란 말을 접했을 때 나는 그만 열광하고 말았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유보시켜 놓고 하지 못한 아까운 순간순간들이 기억나며 다시는 그래 살지 말아야지 다짐시켜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메일의 닉네임을 으로 정했다. 요즘은 카페,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보..

어느날 문득... 2012.10.06

기다림이여 영원하라

지난해 풋치니의 오페라 을 지인들과 함께 보게 되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냥 헤어지기 서운해 공연장 근처에 카페로 자리를 옮기에 되었다. 차를 마시며 자연스레 관람했던 나비부인의 주인공 쵸쵸상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기다림이 화제로 오르게 되었다. 함께했던 사람들 중엔 남성도 있었고 여성들도 있어선지 토론의 중반쯤엔 남녀의 의견차로 다소 격앙된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남성들의 전반적인 의견은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 중엔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의 생각은 아름다움이란 허울을 씌워 여성들의 감정을 쇠뇌시키려는 발칙한 발상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의견합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토론을 끝을 내야 했지만 지금 다시 모여 토론을 한다..

어느날 문득... 201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