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책 어떠세요

로버트 피셔의 <마음속에 녹슨 갑옷>

레이디타임즈 2013. 3. 25. 15:56

임영호의 독서일기

갑옷 놀이는 끝났다! 로버트 피셔의 <마음속에 녹슨 갑옷>

임영호  |  18대 국회의원


“바쁜 사람도 굳센 사람도 바람과 같은 사람들도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가 된다. (....)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걱정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이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은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 있지만.....” 


『김현승』의 ‘아버지’란 시이다. 아버지의 사랑 고독 존재를 그렸다.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아버지는 이렇다. 못살고 못 배운 한을 풀고자 직장에서 사회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밤새 죽으라고 일했고 그것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을 가르쳤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아이들은 장가가고 시집갈 정도로 성장이 하였고 먹고 살 여유도 생겼다.하지만 아버지는 돈과 명예나 쫒는 흔한 인간 속물이며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쓴 이중인격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아버지는 그동안 사랑했던 가족들도 외면하고 말도 통하지 않은, 시대에 뒤 떨어진 세상 속 외톨박이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도 바로 이런 사람이다. 로버트 피셔(Robert Fisher)의 『마음속에 녹슨 갑옷(the knight in Rusty Armor)』에 나오는 주인공인 기사이다. 이 책은 우화로 된 동화책 형식이나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오로지 한길만 열심히 달려온 일중독인 사람들에게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주며 지혜를 나누어 주고 영혼을 일 깨워주는 안내서이다.


 옛날 먼 옛날 용감한 기사가 살았다. 갑옷을 입고 무서운 용과 목숨을 걸고 가정을 위하여 아이들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싸웠다. 시간이 갈수록 기사는 갑옷을 사랑하고 갑옷에 반하여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은 관심이나 애정표현도 할 틈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제부터인가 기사로써 마땅히 할 일도 없어지고 아내나 아이들도 오래된 갑옷을 입은 아버지가 싫다며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아내는 말한다. “ 당신은 가족을 위하여 기사가 된 것이 아니고 당신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희생하며 욕심을 채웠어요.” 이 기사에게 이제 그 앞에 선택하여야 할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하여 갑옷을 벗기로 한다.  


기사는 마법사 현자(賢者) 멀 린을 만나고 그의 인도로 오직 버릴 것만 있는 좁고 험한 길을 가는, 자기 자신을 찾는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멀 린은 기사에게 도중에 길을 가로막는 세 개의 성인 침묵의 성, 지혜의 성, 의지와 용기의 성을 거쳐 가게 한다. 기사는 하나씩 그 성을 지나가면서 조금 씩 조금 씩 녹슨 갑옷을 벗긴다.  


이 녹슨 갑옷은 무엇일까? 그동안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방어하고 감추고 하느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갑옷을 입는다. 갑옷을 위해 소중한 것조차 저버린다. 욕망에 허영에 일에 정신을 뺏겨 내가 갑옷인지 갑옷이 난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걸어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조차 잊고 간다. 자신의 진짜모습은 사라져가고 헛된 자존심과 굴레, 나쁜 습관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과거와의 결별만이 자신이 만든 강철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멀 린의 가르침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나를 가두고 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진정한 나를 알아야 나를 지배할 수 있다. 기사는 서운한 듯 울면서 말한다.  


“여보 내가 이 갑옷을 벗지 못하게 된 것이 내 잘못은 아니잖아. 항상 전투에 대비하느라 갑옷을 입었던 거라고. 내가 갑옷을 입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당신과 크리스토퍼에게 어떻게 좋은 성과 말을 줄 수 있었겠어?”  


정말 이 말은 내가 외치고 싶어 하는 말이다. 억울하다. 이런 기사를 멀 린은 다독인다. ‛그나마 도망치지 않는 사람은 배울 수 있다’며 ‛가족을 위하여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며 자신을 변화시켜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갑 옷 입은 기사와 마법사 멀 린과의 대화가 대부분이다.
기사가 지금의 나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멀 린이 내게 묻는 것 같다.
“저는 제가 착하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기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어요.” “자네가 그런 기사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알리려고 애쓰나?”
“욕망을 진정한 사랑으로 착각한 적은 없었는가?”
정치를 한다는 나에게 할 말을 잃게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부끄러웠다. 아프다.  
갑옷은 세상이 만든 것이다. 서양이 존재사회라면 우리는 관계사회이다. 좁게는 가족 친구 넓게는 직장 일반사회이다. 어느 한순간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또 자기와 관련된 건강이나 재산상태 혹은 평판이나 지위가 타인들에 의하여 평가되고 이해된다. 관계가 많아질수록 세상의 기준이 되는 멋진 모습으로 진정한 내 모습을 가리고 포장한다. 그만큼 갑옷은 입혀져 간다. 


책을 덮었다. 마음에 남는다.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다. 저자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피셔는 암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친다.  
나는 어떤 갑옷을 입고 있을까? 남의 이목을 중요시 하는 나는 남보다 더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을게다. 가끔 하는 연탄배달이나 지하도 계단에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한 푼 주는 것도 ‘착한남자’ 라는 빛나는 갑옷을 만들기 위한 포장은 아니었는지?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에서 맨얼굴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맨얼굴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쓴 가면을 벗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면을 벗는 순간 망가진 맨 얼굴을 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내안의 나를 바라보면서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헛된 마음을 ‘아빠 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백지편지를 받고 흘린 기사의 뜨거운 눈물’로 남보다 더 두꺼울 내 가슴 속에 강철로 된 녹슨 갑옷을 녹여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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