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련이 만난 사람

대전시민대학- 연규문 원장을 만나다-레이디타임즈

레이디타임즈 2013. 8. 15. 16:07

하모니카를 부는 남자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전국은 몸을 달구는 여름 열기로 뜨겁지만 대전엔 마음을 달구는 뜨거운 열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얼마 전 문을 연 시민대학을 향한 배움의 열기다. 이 열기가 모아지고 있는 시민대학은 지금, 누구라도 부담 없이 찾아와 카페, 갤러리, 음악 감상실, 작은 공연장, 사색이 있는 정원 등을 통해 휴식과 지적욕구를 충족하는 힐링 공간으로 꾸며지고 있다.

 

이 힐링 공간의 수장,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연규문 원장실을 노크했다. 그의 사무실은 조촐하면서도 정갈하다.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땀이 흐르는 기자 쪽으로 돌려주는 그의 느낌이 무척이나 따스했다. 그 순간 그에 대한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솔직하게 말하면 오래전 사석에서 그를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때의 느낌은 딱딱하고 과묵해서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네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정 많아 보이는 눈빛을 마주하면서 선입견이란 믿을만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으로 전환될 때 누구나 행복해진다. 그래서 그에게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출범이래 2년여 동안을 오로지 대전의 평생교육만을 생각하며 달려오면서 행복한지 어떤지 나에게 물어볼 겨를도 없었는데 얼마 전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건이 있었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강의실을 둘러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인데 어느날 저녁 강의를 듣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시민대학으로 들어서는 직장인 몇 분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그려왔던 평생교육의 청사진의 일부를 확인한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가 대전에 시민대학을 세워보리란 꿈을 꾼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대학을 졸업한 후 더 큰 배움의 바다로 출항을 꿈꾸었지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각국의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유학의 문을 노크한다. 그의 재능을 인정한 나라는 호주였다. 그리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으로 소망하던 유학을 떠난다.

 

당시 호주는 동양인들에게는 유학의 문을 넓게 열지 않았던 나라였어요. 그리고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도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이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지 조차 몰랐었죠.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많은 석학들과 유럽의 인재들이 모인 세계적인 대학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의 전공은 교육학이었다. 그는 자연스레 외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을 나이 성별 빈부 학벌에 상관없이 배우도록 돕는 시민대학에 주목하게 된다.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평생교육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유학에서 돌아와서 교수, 전문직 공무원 등을 거치면서도 시민대학에 대한 생각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시민대학과 관련한 정보들도 계속적으로 목마른 사슴처럼 흡수해 나간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독일 덴마크 일본 등을 비롯한 시민대학이 모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의 교육현장도 답사를 했다.그렇게 시민대학의 청사진을 하나씩 완성해 나간다.

 

이런 노력을 아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대전에 시민대학이 오픈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또한 의식있는 이들은 옛 충남도청에 시민대학이 자리한 것도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본거지였던 곳에서 대전의 백년대계를 새롭게 세우는 시민대학이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면에서 일제 수탈로 인해 무너졌던 민족의 자존심을 백년대계인 교육으로 회복한다는 면에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지켜봐 주십시요.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다지고 그 다음의 과정 과정이 있듯, 시민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시고 시민대학의 청사진이 어떻게 완성되어 나가는지를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반드시 대전을 발전시킬 역동적인 에너지로 작용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시민대학의 시초는 1844년 덴마크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N. F. 그룬트비가 설립한 시민대학이다. 그룬트비는 시민들이 당시에 처음으로 부여받은 민주적 참여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위해 적합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룬트비의 신념에 기초해 경제적 장벽이나 선발시험제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시민대학이 세워졌다. 세계 최초의 시민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덴마크의 농촌 청년들은 패전에 따른 농업 위기를 극복하여 세계적 농업국, 평화적인 문화국가 건설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구룬트비의 시민대학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에는 현재 938(2010년 기준)의 시민대학(3072개 지부)이 운영되고 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일반 교육기관에서 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민대학이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재정의 약 60%에 해당하는 공적 지원금을 받아서 수강생들이 재정의 약 40%만을 부담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의 대표적인 뮌헨시민대학에서는 연간 약 14000개의 강좌가 개설된다.

 

대전시민대학에서도 1천여개가 넘는 강좌들이 개설되어 있다. 누구든지 관심 가는 강좌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는 의미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다양함은 있지만 차별화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민대학의 강좌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면 그렇게 쉽게 단정 할 수 없음을 단박에 안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1천여개의 강좌들이 단순히 탁상에서 서류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민들이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지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기본 강좌들이 선정되었다. 또한 보편성에서 보면 떨어질진 몰라도 소수의 시민들이 절실하게 배우길 원하는 강좌들을 어렵게 찾아내서 개설한 강좌들도 있다. 

 

강좌 개설을 위해 뛰어다니던 중 60대 남성이 찾아와 캄보디아에 사는 아이를 후원하고 있는데 그 아이에게 캄보디아어로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캄보디아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셔서 수소문해서 캄보디아어를 가르쳐 줄 분을 찾아냈고 강좌를 개설할 수 있었지요. 그분의 기뻐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시민대학의 강좌들이 왜 다양해야 하는지와 차별화가 없다는 지적에 대한 답으로 충분 할 것입니다.” 

 

캄보디아어처럼 소수의 시민들에 절실한 배움의 욕구을 충족하기 위해 개설한 강좌는 또 있다. 바로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다. 하모니카 얘기를 들려주다가 그는 책상서랍에서 USB 크기보다도 작은 네모난 상자를 꺼냈다. 그 작은 상자의 뚜껑을 양쪽으로 잡아당기자 앙증맞은 작은 하모니카가 나온다. 그는 그 작은 하모니카를 꺼내들고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인터뷰는 작은 음악회가 되어 버렸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숲속에서 음~ 우리들을 데려갈까

 

노래 가사처럼 우린 어쩜 배움을 갈구하는 작은 이슬방울들인지 모른다. 이 작은 이슬방울들이 대전시민대학이라는 거대한 숲속에서 배우고 익히다 보면 언젠간 순풍에 돛 단 듯 각자가 목적하는 그곳에 당도에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강현선(전 희망제작소 연구원,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학 석사) <독일의 교육 안전망 <시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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