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의 고정관념을 깨다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채선당플러스(가수원점) 갤러리 dem(덤)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소석 이상순 작가를 만났다. 그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서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단순히 한자를 먹으로 쓴 기존의 서예가 아니다. 글자와 그림의 경계를 넘어 글자가 그림이고 그림이 글자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과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책(冊)> <和樂(화락)> <무(無)요일의 산책> <열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꿀 권리> <드라마(도깨비)> <걱정 말아요 그대> <괜찮아> <네편> <택시> <나무와 강> <행운> <우연> <吉祥如意 和樂且耽(길상여의 화락차탐)> 등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을 확실하게 그녀의 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서예의 순수성은 잃지 않으면서도 서예가 단순히 한자를 먹으로 쓰는 것이란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싶었습니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유화, 추상화, 팝아트처럼 당당히 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던 그녀가 서예에 입문한 것은 23년 전이다. 큰 아이를 임신하면서 태교를 위해 동네 서예학원을 찾으면서 그녀의 서예 인생은 시작되었다. 큰아이에 출산에 이어 둘째와 셋째 아이를 낳고 나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처음 붓을 잡던 그날 이후 서예에 대한 갈증은 깊어만 갔다. 급기야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서예를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고만고만한 아이들로 인해 매일 붓을 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그녀. 아쉬워하는 그녀를 다독여 준 것은 바로 남편이었다.
“아이들로 인해 포기하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은 막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을 해 주었는데 당시만 해도 저를 달래기 위한 소리로만 알았어요. 근데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남편이 하고 싶은 서예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남편에 독려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대전대학교 서예과를 졸업하고 공주대 대학원 한문교육과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세 아이의 엄마임에도 목표한 것을 이루고 전문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또래 주부들에게도 큰 용기가 되고 있다. 그녀로 인해 서예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녀의 작업실이자 교육장인 대능서예한자학원(대전 서구 배재로 155-7 경남상가 3층2호)에는 서예를 통해 교감하는 사람들로 화기애애하다. 악필이라고 서예를 망설이는 이들도 그녀와 함께라면 자신감이 넘친다. 잘 쓴 글씨체를 모방하다 보면 시나브로 자기만의 글씨체가 정립되기 때문이다.
“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엄마가 우선 행복해야 합니다. 서예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비법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마음이 고요해지고 도를 닦는 느낌이 들어요.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수월했던 것도 서예를 통해 정서적으로 마음이 안정되었고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수련이 절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추구하는 서예는 중국의 서법과 일본의 서도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그리기와 쓰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추상예술로서의 서예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는 서예가 문자를 넘어 그림으로 변화하여 실용화, 장식화, 예술화가 된지 오래다. 한글도 한자 못지않게 글자마다 미적인 요소를 충분히 표출할 수 있는 글자다.
그녀는 서예란 종이에 마음을 담는 작업이며 완성된 작품은 자신이 잉태한 아이이라 한다. 훌륭한 아이를 탄생시키기 위해선 태교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좋은 작품을 탄생하기 위해서는 독서와 사색이란 태교가 필요하다. 마음을 다듬고 정서를 함양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절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없음이다.
우리말에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는 그녀는 좋은 글귀를 만나면 가슴이 설렌다.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고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마음으로 다가오는 글귀들을 메모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다. 저작권법이 강화되면서 타인의 글을 함부로 작품에 접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붓을 통해 좋은 글귀들이 마음에 꼭 드는 작품으로 완성되어 바라볼 때마다 교감하는 느낌이 들 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동이 밀려듭니다. 서예가로서 소망이라면 앞으로도 좋은 글들을 소재로 많은 분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작품을 끊임없이 탄생시켰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녀의 노력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문인화), 대전광역시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9회)을 통해 인정받았다. 또한 충청서도대전 초대작가, 한국서도협회 대전충남지회 간사 및 이사 운영위원, 충청여류서단 정담묵연회 등을 통해 인정받는 작가로 우뚝 설 수 있음이다.
“서예를 통해 많은 분들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서예를 통해 제가 듣고 싶은 말과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서양의 추상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동양의 서예라고 한다. 서양 작가들은 글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서예의 높은 정신적 경지에 놀라워한다. 글자와 그림은 한 몸임을 입증하는 서화일치의 서예는 21세기 융합이란 코드에 적합한 또 다른 가능성이다. 이상순 서예가를 만나면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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