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련이 만난 사람

서각-서각하는 여자 -영어교사에서 서각작가로 도순희 서각작가-레이디타임즈

레이디타임즈 2017. 3. 31. 11:26

서각 하는 여자영어강사에서 서각작가로 ..도순희 서각작가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요즘 카카오 스토리 재미에 푹 빠진 주부들이 많을 것이다. 타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인연을 통해 활력을 찾는 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카카오 스토리 친구 중에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닌 여자가 있다. 바로 도순희 서각작가다. 그녀의 미소에 반해 카친을 신청하면서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요즘 그녀에게 기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취미로 시작했던 서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대회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하면서 서각작가로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되고 있다. 서각을 시작한지 불과 2년여 만에 제11회 충청서도대전 입선/제13회 충청 서도대전 특선/제19회 소품서예문인회대전 입선/제20회 서계서도문화예술대전 삼체상/ 제18회 서예문인화대전 입선/ 제20회 대한민국소품서예문인화 우수상 /제19회 한일 국제인테리어서도대전 특선 등을 통해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언제나 소녀 같은 풋풋함으로 만나는 이들을 무장해제 시켜 버리는 그녀. 그녀에게 서각은 예술이 아니다. 나무판을 마음 삼아 음각 양각으로 자신을 다스려 가는 수련의 과정이다. 고된 서각의 과정은 미움이란 옹이를 파내고 돋아 오르는 상처를 사포질로 갈아낸다. 눌러도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깎아내고 또 깎아내는 인고의 시간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통해 골 깊었던 상처들이 <세심> <무소유> <사랑> <행복> <행복 가득> <동행> <樂> <甘雨> <浩然芝氣> <깊은 물은 고요하다> <도약> 등의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치유력이 있다. 바라보는 이들의 내재된 상처를 대신 어루만지는 카타르시스다.


그녀의 본업은 영어 강사다. 경북 영주에 위치한 영광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재직하는 동안 학교 안팎에 활력을 충전시키며 학생들은 물론 동료 및 학부모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전도유망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강권으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들었던 아이들의 눈물을 뒤로 한 채 대전으로 왔다. 하지만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형편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접을 수 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입시전문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밤을 낮 삼아 영어강사로 뛰었지만 가족이 있어 힘든 줄도 몰랐다. 오직 남편과 아이들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종달새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그 울타리 안에는 사랑했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과 먹빛 같은 잉여의 삶이 전부였다. 그 절망적인 먹빛 삶을 떨쳐내고자 시작했던 것이 바로 서각이다.


서각 할 채비를 하는 그녀의 손길에 정성이 배어 있다. 번잡했던 생각을 털어내듯 말끔하게 대패질을 한 나무판을 준비한다. 마음 판이 된 나무판 위에 상처를 대신할 글씨와 그림 원고를 붙인다. 붙인 글씨와 그림이 마르기까지의 기다림. 그 기다림이 끝나면 글씨나 그림의 선 따라 나무의 결 따라 조심스레 서각을 시작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글씨나 그림을 남기고 나무판을 깎아 내는 음각 서각을 마친 후 글씨나 그림 원고를 물걸레로 말끔하게 제거한다. 여분의 물기가 마르기까지의 기다림이 지나면 물감을 넣고 닦아낸다. 마지막으로 고리를 달면 서각작품이 완성된다.
“마음에 나쁜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좋은 것들만을 새기고 싶은 마음으로 나무판에 좋은 글귀를 새깁니다. 돌이켜 보면 한풀이 하듯이 시작했던 서각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감정들이 녹아들었는지 나무를 만지면 깊은 물처럼 고요해지네요. 이것이 바로 서각의 힘인 것 같아요.”


서각을 통해 다시금 일상에 대한 감사도 되찾았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딸과 아들이다. 한국인 최초로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트리니티 의대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닥터로 일하고 있는 딸.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열심히 가꾸어가는 아들. 열심히 살아온 그녀에겐 훈장이고 월계관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다.
눈물이 마른 그녀의 얼굴엔 백만 불짜리 미소만이 가득하다. 내년에는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한국과 일본 작가들의 교류전에도 초대받았다. 일본과 교류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쉬움도 많은 그녀다. 일본의 현대서각은 우리나라에서 배워간 것임에도 우리나라보다는 많이 앞서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예술의 한 장르로 연구가 활발하고 전문서적도 나와 있다는 것도 부럽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전 및 공모전에 많은 서각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서각부를 따로 분류함으로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되고 있다는 것도 부럽기만 하다.
“서각은 크게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으로 나누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필서를 그대로 옮기는 전통서각보다는 입체적이며 조형적인 마치 서양의 추상화나 조각 같은 느낌이 나는 현대서각이 더 매력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개인전을 해 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저의 서각작품을 통해 현대서각의 매력을 알리고 괴로운 마음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네요.”

 


영어 강사로 서각작가로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살고 있는 그녀. 그 바쁨을 쪼개어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특히 전문직 여성들의 국제적인 봉사단체인 <사)국제 존타 한국지구>와 <소롭트미스트> 등을 통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엔 그녀가 주축이 되어 다문화주부의 친정집 돕기 일일찻집과 바자회도 열었다. 그녀가 현장에서 만난 많은 다문화 주부들이 가난한 친정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전해져 왔음이다.
“다문화 주부들이 한국인의 아내로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친정집의 경제적인 자립이 우선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면서 금산에 살고 있는 캄보디아 오지마을에서 시집 온 호우라이애 주부도 친정집 돕기 일일찻집&바자회를 여성신문 레이디타임즈와 열었습니다. 행사를 통해 호우라이애의 캄보디아 친정집이 자립이 되었고 그녀도 매사에 의욕적인 되어 행복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남은 삶 동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그녀가 봄 햇살 속에서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짓고 있다. 격정의 바다를 건너 온 이들만이 보여주는 여유로움과 따스함이 그 미소에 배어있다. 서각 하는 여자 도순희 작가의 미소가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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