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테너, 루이스 초이를 만나다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카운터테너하면 영화 <파리넬리>가 떠오른다.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가수), 파리넬리가 트럼펫 연주자와 대결을 벌인다. '파리넬리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각자 지닌 기교와 음역을 넘어 절정에 달하자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트럼펫 연주자는 무릎을 꿇고 만다. 영화 속에 명장면이다.
카운터테너란 19세기말까지 여성의 출입을 금했던 유럽교회에서 성가대의 여성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한 남성 카스트라토를 일컫는다. 비발디, 헨델 등 바로크 오페라 붐에 힘입어 17~8세기 오페라의 주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카스트라토. 19세기 초 법적으로 인권차원에서 이들의 활동이 금지되었다. 미성을 가진 소년들을 사춘기 전에 거세해 그 미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기때문이다.
현대에 카운터테너를 부활시킨 것은 영국의 앨프리드 델러(1912~1979)다. 그에 의해 거세라는 신체적 변화를 통하지 않고도 훈련을 통해 카운터테너의 음역을 노래할 수 있게 됐다. 바로 팔세토(가성) 창법에 의해서다. 팔세토 창법이란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소리로 호흡을 받쳐서 소리를 머리로 띄워 올리는 창법이다. 현재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빅3로는 독일의 <안드레아스 숄> 일본의 <브라이언 아사> 미국의 <데이비드 대니얼스> 등, 세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운터테너로 활동하는 성악가 루이스 초이를 만났다. 반갑게도 그는 대전출신이다. 아직은 우리나라 관중에게는 낯선 카운터테너란 장르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를 알리기 위해 앨범제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다한다. 그래서 얻은 닉네임은 '최전국'이다. 그는 대학시절 성악(테너)을 전공했다. 카운터테너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군 복무를 하던 중 우연히 TV에서 독일출신 카운터테너인 '안드레아스 숄'의 공연을 접하게 되면서 부터다.
대학시절 자신도 연습을 위해 자주 가성(팔세토)창법으로 소프라노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를 쉽고 편하게 부를 있다는 느낌을 느꼈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후 카운터테너에 대한 관심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 된다.
군에서 휴가를 얻어 테스트도 받는다. 결과는 카운터테너의 조건으로 최고란 평가를 듣는다. 군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 테너에서 카운터테너로 전향,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처음 카운터테너로서 무대에 섰을 때 그리 좋은 평가는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남자가 여자소리를 낸다는 것에 대한 반응은 2가지였다. 500명 관객 중 200명 정도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대해 놀라워 했고 300명은 대놓고 웃었다. 그리고 차마 웃지는 못하고 고개를 숙이시는 관객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면 ‘앞으로 내가 이것을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고 시인한다.
“저를 아끼는 교수님들은 '왜? 굳이!'라며 카운터테너로의 선택에 만류도 하셨지만 저는 10년후에는 판도가 달라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카운터테너를 많이 배출한 독일로의 유학을 결심하게 하였고 독일에서 유학하며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저는 카운터테너로 노래 할 때가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제가 자신감에 넘쳐 노래할 때 관객들도 큰 감동을 받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최경배>다. 연극배우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독일 유학 후, 한국에 들어오자 '나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루이스 초이로 개명도 했다. 카운터테너란 파격적인 장르에 어울리게 과감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도 접목했다. 결과는 팬들의 시선집중으로 나타났다. 성악가로서 그의 혁명은 성공인 셈이다.
루이스 초이의 무대는 특히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해 4월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성악가 김동규와 함께한 무대에서 그의 인기는 국민 성악가 김동규를 능가했다. 또한 TV출연 '위대한 탄생(MBC)'과 설운도와 함께한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에서 파격적인 모습으로 다양한 팬 층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여성 팬 중에서도 주부 팬들이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남성이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한다는 것이 신선하면서도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또한 이전에 없었던 장르에 대한 호기심 등 제가 카운터테너를 하면서 확신했던 것들이 적중하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인터넷 다음카페(http://cafe.daum.net/Louischoi)가 있는데 아직은 회원수가 많지는 않지만 고정팬이 있어요. 주위에서는 '그러지 좀 마!' 라고도 하는데, 제가 댓글을 일일이 달아 줍니다. 특히 지방공연 할 때는 팬들에게 메시지와 전화 등으로 홍보도 직접 합니다. 굿타임즈 독자분들도 대전공연이 잡히면 초대하겠습니다.”
그의 첫 앨범 <울게하소서>는 여성팬들에게 인기다. 앨범제작 당시의 고충도 이야기 한다. 명색이 독일 유학파이며 바로크전공자인데 바로크음악으로 앨범을 내야한다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전 국민의 약 97% 가까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층이라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흔하게 접하는 '넬라 판타지아' '울게하소서', '아베마리아'를 선택해 첫앨범을 만든 이유도 분명하다.
“같지만 다른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같은 울게하소서, 아베마리아, 넬라환타지아도 루이스 초이만의 색깔로 해석한 앨범은 세상엔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운터테너는 동성연애자가 아니다
‘언제까지 노래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저도 해봐야 알겠다’라고 답하지만 그의 얼굴은 밝다. 때론 사람들에게 황당한 질문도 받는다. ‘혹시 동성연애자 아니냐? 또는 '수명이 짧아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는다.
“제 앨범의 타이틀인 '울게하소서'에서 보듯이 레퍼토리 선정에서 영화 파리넬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제 외모 때문에 동성연애자로 오해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엄밀하게 말해서 파리넬리는 변성기 이전의 소리를 지키기 위해 남성성을 거세한 카스트라토이고, 저와 같은 카운터테너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호흡과 두성을 이용한 가성창법을 사용 합니다.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무대 밖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가정생활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카운터테너로 활동하는 성악가의 8~90%가 메조와 알토성의 카운터테너이다. 카스트라토와 가까운 카운터테너하면 소프라노성 카운터테너를 꼽지만 겨우 10% 밖에 안된다. 한국인 루이스 초이가 이 10%에 속한다. 그래도 그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한다.
한국인 카운터테너로서 특화된 레퍼토리를 만들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은 그의 몫이다. 초창기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7시간을 운전하면서도 행복했다.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 미개척 분야인 카운터테너의 길을 닦아가고 있다. 그의 팬들은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카운터테너라 부른다.
-프로필-
뒤셀도르프 로버트 슈만 국립음악대학 오페라과 졸업
뒤셀도르프 로버트 슈만 국립음악대학 연주학 박사 졸업
데뷔 뒤셀도르프 국립극장 musical “Mio, mein mio” 데뷔
수상내역
독일 “Duesseldorf DAAD 장학생”
Schmolz Bikenbach 콩쿠르 3등
독일 Lions Club 국제 성악 콩쿠르 특별상과 관객상
경력
독일 ColVoc 앙상블 단원 역임
한국 한복 연합 단체 아티스트 공로상 수여
한국 유나이티트 문화재단 올해의 아티스트상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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