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든 여자 문인화가 아정 김오순을 만나다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아정 김오순 화가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매서운 추위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하다.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 독거노인 환자 돕기 일일찻집에서였다. 초면임에도 물질과 마음을 온전히 기부하는 따스한 그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공주에 살고 있다는 그녀의 집을 물어물어 당도해 초인종을 누르니 정든 님 반기듯 반색을 한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밖은 겨울인데 집안은 살구꽃 피어나는 고향의 봄날이다. 겨울햇살이 비쳐드는 거실창에 둘러쳐진 광목 커튼엔 매화, 복사꽃이 만발해 꽃 대궐이 펼쳐졌다. 소파 위에 쿠션들마다 목단, 국화, 장미 꽃들이 피어나 한 가득 꽃밭을 이뤘다.
집안 곳곳에 놓인 물건마다 그녀가 그려 넣은 꽃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홀린다. 마치 효심 지극한 소녀가 병든 엄마의 약을 구하기 위해 오른 겨울 산에서 도화세계를 만난 것처럼 눈부시다.
일일찻집에서 처음 본 그녀의 작품을 통해 그림은 벽에 걸고 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말았다. 나 뿐 아니라 일일찻집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가을비가 내리고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날씨임에도 그녀의 작품들은 지나는 이들의 시선들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작업실로 꾸며진 작은 방으로 들어서니 먹으로 그려진 부엉이가 현자처럼 시선을 마주한다. 깊은 밤 부엉이처럼 홀로 깨어나 난을 치고 매화와 장미를 그리며 까만 밤을 하얗게 보냈을 이 공간엔 그녀의 예술혼이 충만하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주된 캔버스는 광목천이다. 이 광목에 문인화를 그려서 방석, 러너, 커튼, 이불 등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작품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장식적인 요소와 건강이란 현대적인 키워드를 모두 만족시킨다는 점이다.
“광목은 100% 순면이며 자연친화적인 원단으로 형광이나 표백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아토피나 알러지가 있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입니다. 처음엔 누런색이지만 쓰면 쓸수록 뽀해지고 부드러워진다는 매력도 있지요. 또한 어느 천보다도 실용적이고 튼튼해 그림을 그리기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고향은 전북 고창 인촌. 인촌선생 생가 바로 옆집이 그녀의 고향집이다. 어릴적 부터 유난히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어떤 종이든 캔버스 삼아 셀수 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누군가 장래 희망을 말하라면 서슴없이 화가라고 할 만큼 화가의 꿈은 유년시절부터 확고했다. 이런 그녀의꿈을 응원해준 잊지못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방학이면 45명 반 아이들에게 손수 그린 엽서를 보내주셨는데 저에게 보내주신 엽서에는 ‘그림을 좋아하는 오순아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되어라’고 쓰여 있었지요. 고향집에서 30여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섬 죽도가있었는데 그섬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를 바라보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런 낭만적인 작은학교에서 미술을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아쉽게도 집안 사정으로 미대로의 진학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 취업을 고민하던 중 재능을 알아 본 지인의 추천으로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게 되면서 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날개를 달게 된다. 당시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꽤 잘나가는 직업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직접 수작업으로 그리던 그림의 가격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사나염이니 스크린 인쇄니 하는 화려한 기법들이 직접 그리는 그림과 대체되었고 직접 그리는 그림은 쇠퇴해져만 갔다. 그녀 또한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들은 시간이 갈수록 식상해졌다. 그리고 더욱 자신만의 그림을 갈망하게 된다.
간절한 그녀의 소망은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다. 좋은 스승과 동료들을 만나게 되면서 문인화에 빠지게된다. 그리고 화가의 꿈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 함께 그림을 그렸던 멤버들은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유명인들이 되었는데 저는 사정이 생겨 그림을 놓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림을 중단했던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그녀가 여유를 찾고 다시 그림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충남문인화 회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미술대전 및 서예대전에서 많은 수상도 했다. 대한민국문인화대전2회입선, 매죽헌세예대전문인화특선, 한국서도대전문인화특선, 대한민국무궁화대전위원장상, 대전서예대전문인화2회입선, 대한민국사비화예술대전입선, 한국서예협회문인화입선, 경찰문화대전문인화입선, 한국백제서화협회입선, 하람초아전4회 등이다.
그녀 작품의 단골 소재는 꽃이다. 꽃을 그리기 전 주변에 피어난 다양한 꽃들을 관찰하는 것도 그녀의 또 다른 취미다. 관찰한 꽃들은 그녀의 붓끝에선 아정 김오순만의 향기로운 꽃들로 새롭게 피어난다. 그림 그리는 일과 함께 요즘은 천연염색의 매력에도 흠뻑 빠져 있다. 손수 염색한 원단에 그림을 엊을때의 행복은 화가로서 느끼는 최고의 보람이다.
“그림을 액자 속에 넣어서 감상하는 것만이 아닌 장식효과를 겸해 생활용품으로서의 기능을 더하는 그림이 제가 추구하는 그림입니다. 작품의 차별화를 위해 광목천에 문인화를 그려 넣고 여기에 천연염색과 시를 접목해 보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제가 그린 작품들이 좋다고 사랑해 주시니 행복합니다. ”
인터뷰가 끝난 후 천연염색한 면에 매화를 그려 넣은 손수건을 선물로 주었다. 건네 받은 손수건은 땀을 닦는 손수건이라기 보다는 한 점의 멋진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붓을 든 여자 아정 김오순.
우리에겐 이미 최고의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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