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소리-박기종 선생님을 만나다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본토박이 서도소리의 산역사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인 서도지역에서 전승되던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한다. 본토박이 서도소리 전수자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서도소리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지정된 박기종(88) 선생. 우리나라 서도소리의 복원과 전수에 평생을 바쳐온 소리꾼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길디긴 서도소리의 가사들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의 기억은 독야청정하다. 대전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서도소리 저변확대를 위한 그의 노력도 남다르다.
서도소리의 모든 것을 후대에 전하려는 일념으로 자비로 제작한 서도민요 100여곡, 서도잡가 70여곡을 수록한 서도소리 가사집과 관련음반 8장을 완성했다. 지난해엔 <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도 완성했다. 그가 알고 있는 본토박이 서도소리의 모든 곡들이 수록되어 있어 후대의 서도소리 역사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외에도 서도소리가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해마다 무대를 마련한다. 서도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지난 1996년부터 문화생들과 함께하는 서도소리 공연은 매년 연례행사다. 공연의 통해 선생의 대표곡인 서도지방의 수심가, 반엮음수심가, 엮음수심가 등과 함께 서도소리의 진수를 들을 수 있다.
박기종 선생은 1926년 황해도 벽성면 고산면 원평리 임정동에서 태어났다. 서도소리의 본고장에서 태어나 서도소리에 빠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당시 병에 걸려 고향마을로 요양하러 온 해주권반 출신의 산홍 선생의 소리에 매료되면서부터다.
이후 산홍 선생의 제자가 되고 8.15 해방이 되자 산홍은 요양을 끝내고 해주본가로 떠나면서 그를 긴소리의 대가 민형식 선생에게 소개를 시켜준다. 민형식 선생에게 긴난봉가, 악양루가, 기성팔경 등의 긴소리를 사사 받던 중 민형식 선생이 이사를 가며 평양의 수심가의 대가인 이정근 선생을 소개시켜준다.
당시 이북은 공산주의자들의 집권으로 전통적인 소리를 드러내 놓고 배우는 시절이 아니었다. 소리를 배우고 부르는 것은 부르조아 사상에 물든 반동으로 체포해 가는 공포적인 사회적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를 배우고 싶은 갈증을 주체할 수 없었던 선생은 낮에는 연초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남몰래 이정근 선생에게 서도소리를 배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감시와 탄압으로 인해 더 이상 소리를 배울 수 없게 되자 이정근 선생의 권유로 남한으로 넘어온다.
남한으로 온 그는 서울문리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한 후 교직에 몸담는다. 초임 중등교사 발령지를 자원하여 전라도 지역으로 택한 것도 남도소리를 배우고픈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서도소리 창법에 익숙한 그에겐 남도소리는 맞지 않았다. 대전으로 교직 발령을 신청한 선생은 대전에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퇴근 후엔 목청을 가다듬고 서도소리 연습에 매진한다. 이런 중에도 서울국립국악원에서 정가(가곡, 가사, 시조)의 대가 이양교 선생을 만나 정가를 사사받는다. ‘정가는 서도소리의 발성법과 같으므로 남한에 가면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평양의 이정근 선생의 당부가 있었던 것이 적극적으로 배우게 계기다.
서도소리를 하기위해 다양한 소리를 섭렵했던 선생은 같은 서도소리라도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의 소리의 맛이 다르고 전한다. 평안도 소리는 사설이 길며 장단도 일정하지 않아 적당히 사설에 맞추어 치는 것이 특징이다. 평안도의 대표적인 민요로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안주애원성 등이 있다.
황해도 민요는 평안도 민요에 비하여 일정한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밝고 서정적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이 있다.서도잡가의 특징은 긴 사설과 노래말의 자수에 따라 불규칙적인 장단이 특징이다. 공통점은 반드시 수심가조로 끝난다. 서도잡가의 대표적인 곡은 공명가, 사설공명가, 초한가, 제전, 추풍감별곡 등이 있다.
서도소리의 ‘서’자만 나와도 거침없이 설명하는 서도소리의 산역사인 선생이 황해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많은 이들은 너나없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90을 바라보는 선생이 슬픈 이유는 따로 있다. 스승 이정근 선생의 말처럼 고려청자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서도소리의 곡들이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것이 슬픈 이유다.
인터뷰를 하면서 감사한 것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아직은 건강한 선생의 모습을 뵐 수 있음이다. 현재 서도소리의 본고장인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문화말살 정책으로 인해 전통서도소리의 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하기에 유일한 본토박이 서도소리의 대가 박기종 선생이 오래오래 대전국악계를 지켜 주길 소망해 본다.
약력
1928. 10. 황해도 벽성군 고산면 원평리 임정동 출생
서울문리사법대학 국어과 졸업
명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
중.고등학교 교원 36년 봉직
목원대 음대 및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강사
대전시 문화예술 진흥위원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고문
무형문화재 서도소리(황해도2호)예능보유자
무형문화재41호(가사)예능이수자
문교부장관상 수상(1988)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1992)
시립국악원 국악경연대회 성악부 최우수상(1993)
서도소리 발표회(대전 6회/서울 3회)
저서-서도소리 음반전집(CD 8매-2000년)
경.서도소리 가사선집(1999년)
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 엮음(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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