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by Step-버팀목요양원 오재현 목사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휴먼 콜렉터란 닉네임을 걸고 지역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평범함이 비범함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다. 버팀목요양원 오재현 목사님도 평범해 보이지만 지극히 비범한 사람이다. 목사이면서 사회복지사이면서 화가라면 비범함 맞지 않은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필자가 기획한 전시회 오프닝에서다. 예산에 사는 지인과 동행했던 그는 전시된 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오프닝 행사의 이모저모를 자신의 일처럼 챙겨 준 고마운 사람이다.
오프닝이 끝나갈 무렵 그가 즉석에서 그렸다며 필자의 캐리커처를 내밀었다. 튀어나온 광대뼈하며 짧은 커트머리 등 필자의 특징을 섬세하게 캐치한 모습이 마음에 쏙 들었다. 캐리커처의 수준으로 보아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화가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평생교육원의 수업을 들으며 독학으로 선긋기부터 시작해 데생을 마스트하고 취미삼아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가 취미라고 말했지만 왠지 그의 작품이 궁금했다.
그와 헤어져 그의 카카오스토리를 방문했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려 진 그가 그린 그림들은 색감 뿐 아니라 터치감도 너무 좋았다. 취미로 그린다는 그의 말은 겸손일 뿐이었다. 정식으로 전시를 기획해 보고 싶어 그에게 전시 제안을 했다. 반갑게도 개인전을 열어 보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단다.
그렇게 기획된 그의 전시가 오는 4월1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 덤(채선당플러스 가수원점 내)에서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이란 제목으로 열린다.
그는 정식으로 미술을 전공하지 못했다. 가장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상경했다고 한다. 상경한 후 형님 집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대입시험을 보았지만 가고 싶은 학과가 아닌 다른 진로를 놓고 대입을 봐야 하는 그에게 낙방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잠을 쫓기 위해 연습장에 데생 연습을 할 때마다 미대에 진학해 전문적으로 그림을 전공해 보고 싶은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꿈에 이끌려 입시전문 미술학원을 찾아가지만 그의 형편으로는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기 버거웠다. 이후 꿈을 이루기 위해 봉제공장에 취직한다.
“미대 진학을 꿈꾸면서 당시 숙명여대 부근의 미술학원을 찾아가 그동안 연습했던 데생 연습장을 원장님께 보여주었더니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미술 공부는 학비가 많이 든다는 말을 듣고 당시 가정형편으로는 엄두도 못 낼 처지였기에 미대로의 진학은 포기했지만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습관이 되어 버렸지요.”
꿈을 이룰 수 없었던 19살 청년시절 그는 평생을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를 위해 헌신하며 살겠노라 결심을 한다. 이런 그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해 주신 분은 그의 멘토가 되어 주셨던 목사님이다.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목회의 방향을 복지사역으로 정한다. 이후 치매와 노환으로 고통 받은 소외계층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시설에서 많은 시간을 헌신한다.
“제가 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사회복지시설에서 사역을 시작했던 20여년 전만해도 냄새나는 협소한 시설에서 입소자들이 겨우 끼니만 때우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입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암담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열심히 하는 만큼 입소자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원형탈모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가 하나님께서 지금의 요양원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미리 훈련시키신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고 개인적으로는 저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지금의 버팀목요양원을 세운 것은 13년 전이다. 신앙적인 열정만으로 아내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요양원 건물도 손수 지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땀 흘리며 기도하고 건축했기에 요양원 안에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감사가 넘치는 곳엔 웃음도 넘친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 하는 요양원으로 입소문이 났다. 현재 어르신 9명에 직원 7명이 생활하는 행복한 가정이다.
버팀목요양원의 차별화를 꼽는다면 첫째, 시설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없다는 점. 둘째, 시설에 잠금장치 없이 자유롭게 개방 되어 있다는 점. 셋째, 기부를 받는 시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누어 주는 시설이라는 점. 넷째,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토요일 지정제로 자발적인 봉사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이다.
특히 버팀목요양원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복지시설임에도 나누고 베푸는 시설로 지역주민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매주 23명의 저소득 독거노인 가정에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 또한 지역 장애우들을 위해 차량 이동봉사도 해준다. 이외에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미자립교회 3곳에 해마다 김장을 담가 나누고 있다.
그가 버팀목요양원을 설립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을 어르신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어르신들이 이곳에 입소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임종 전에 자손들에게 교회에 꼭 나가라는 당부를 하는 모습이 그가 누리는 가장 큰 보람이다. 복음을 통해 어르신들이 변화되는 체험을 하면서 새로운 비전도 생겼다. 바로 미자립교회 은퇴목회자들의 노후를 위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한 일환이다. 감사한 것은 복지사역 20년 만에 저녁이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가 그림에 담아내고 싶은 것은 주변 환경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의 아름다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의 아름다움이 녹아든 그림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 받기를 바라며 기쁨과 찬미로 붓을 든다. 기쁨과 찬미로 그려진 그의 그림들을 소장하는 이들도 생겼다. 소장가들이 그림값으로 내놓은 금액은 은퇴목회자들의 공동체 설립기금으로 전액 모아지고 있다.
“평생을 열악한 환경에서 목회를 하시고 은퇴하신 가난하고 힘없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만나면 가슴이 아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들의 남은 여생을 걱정 없이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도제목은 자동차로 10분 안에 병원을 갈 수 있는 위치에 공동체를 세울 3천 평의 대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기에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한발 한발 묵묵히 기도하며 나아갈 뿐이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Step by Step)을 통해 비전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그의 성실한 발걸음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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