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원의 <청산별곡>

최병원의 청산별곡-설국의 정취에 푹 빠졌던 다이센 산행

레이디타임즈 2015. 11. 23. 11:06

설국의 정취에 푹 빠졌던 다이센 산행 최병원의 청산별곡

최병원  |  등반가


여행은 어쩌면 준비했지만 계획한대로 이루기 힘든 역설적 과정을 가진다.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애로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난관과 애로를 극복하는 여정도 여행의 묘미라고 볼 수 있다. 주어진 일정을 순탄하게 진행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예상 못 한 일을 타개해 나가는 것도 여행이 주는 묘미이다.

 

다이센 산행은 폭설로 산 정상을 밟지는 못했지만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사카이미나토항의 입국 심사는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1시간여의 입국 심사 후 일행을 태운 버스는 곧바로 다이센으로 향한다.

 

버스는 산 중턱에서 스노체인을 끼우기 위해 잠시 멈추는데 일본인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온통 눈으로 덮인 산사면을 따라 조금 오르니 주차장에 도착한다 

 

눈을 치우는 중장비들이 힘차게 눈을 길가로 날려 버린다. 장관이다. 전혀 보지 못했던 장면이기에 신기하다. 표지판이 눈 속에 파묻혀 있다. 지난 밤 엄청난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등산로는 러셀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일행들이 번갈아가며 길을 내지만 쉽게 전진할 수 없는 엄청난 적설량이다. 도저히 산행을 계속할 여건이 아니다. 가이드와 의견을 나누고 산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하산하며 아미타당으로 방향을 바꾼다.

 

다이센(大山) 정상이 2.2km라는 이정표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겨우 800m 전진했을 뿐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곡이 보이는 난간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다이센지(大神山神社)와 오가미야마 신사로 눈길을 헤치고 오른다.

 

본래 이 길은 다이센 정상에서 하산 코스로 많이 이용하는데 오늘은 눈이 많이 쌓인 호젓함을 간직하고 일행을 맞는다. 신사 기둥 문을 좌측으로 돌아 오가미야마 신사로 길을 찾는다.

 

다이센 주변은 한때 수십 개의 절과 신사들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신성한 산으로 숭배되어, 산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번성했다.

 

일본 메이지유신 이후 절과 신사를 상당수 정리했지만 아직 대규모 신사와 절이 등산로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와 너도밤나무에는 엄청난 양의 눈이 쌓여 가지가 휘어져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준다.

 

신사의 경사진 언덕의 눈을 치우는 작은 차가 뿜어내는 눈보라가 멋지다. 참배객을 위해 길을 만드는 노력이 우린에겐 너무 늦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눈 속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신수(神水)를 마시는 산꾼들의 행렬을 뒤로 하고 아까 왔던 길로 계속 내려선다. 마을 입구로 내려서니 중장비들이 눈을 치운다. 하얗게 지붕을 덮은 모습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눈부시게 아름답다. 빨간 우체통이 앙증스럽다.

 

구상나무의 높다란 하늘 보기에도 하얀 눈꽃은 크리스마스 산타 할아버지 동네를 연상시킨다. 설국의 풍경이 파란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다이센의 모습도 파란 하늘에 조화를 이루며 조금씩 자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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