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트레킹 7편 카트만두와 나가르콧의 편안한 여정
최병원 | 여행가
에베레스트 트레킹 7편 - 카트만두와 나가르콧의 편안한 여정
2015년 1월21일 (수)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영상 5~15도
루크라 → 카트만두 → 타멜 시장 → Nagarkot
루크라를 떠나 카트만두로 무사히 돌아왔는데 비행기를 타는 동안 코감기로 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하늘에서 본 히말라야의 경치도 그다지 신비감이 없었는데 에베레스트 근처까지 다녀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안나푸르나, 랑탕, 그리고 에베레스트로 이어진 트레킹으로 히말라야와의 만남을 즐겼고, 산꾼의 긍지도 키웠다. 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생겼지만 삶과 죽음이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경계심도 가득하다. 하얀 설산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과 행로에 대하여 가치를 찾을 수 있었음은 큰 기쁨이다.
◈ 카트만두(Kathmandu)
네팔의 수도로 교통,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통계마다 다르지만 대략 200만 명이고, 네팔 분지의 중앙, 해발고도 1,324m 지점에 위치하며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곳 카트만두의 옛 이름은 칸티푸르(Kantipur)라고 한다. 10세기 무렵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말라 왕조 때부터이다. 18세기 후반에 말라 왕조의 뒤를 이은 구르카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정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번영을 누렸다. 주민의 대부분은 네와르족(族)이고 티베트인, 인도계 네팔인등이 뒤섞여 살고 있다.
시가지에는 행정청, 옛 왕궁, 대학 외에 불교 ·힌두교 사찰이 많고, 특히 5층의 왕실 성묘 탈레주(1549)와 목조 사찰 카트만두(1596년 건립,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로 유명하다.
◈ 타멜 (THAMEL)
서울의 이태원에 비유되는 곳이다.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숙소, 레스토랑, 등산 장비점, 기념품점, 인터넷방, 여행사 등이 밀집해 있다. 타멜은 다른 관광지에 비해 유적은 없지만 여행자의 흥미를 끌만한 여러 가게가 몰려있는 곳이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될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런데 편의시설이 많아 편리하기는 하지만 차량과 사람이 많아 시끄럽고 공기가 맑지 않다.
복잡한 카트만두 타멜시장을 돌아보며 예전 트레킹 때를 회상한다. 도시는 많이 변했지만 심각한 먼지와 대기 오염 그리고 무질서의 혼돈이 이방인을 힘들고 지치게 한다. 일행 중 한 분이 위염으로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트레킹의 후유증인가보다. 점심으로 네팔 음식 달 밧을 들었다. 기대와 달리 입맛에 맞지 않아 주어진 양을 다 먹지 못했다. 그래도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중형버스로 옮겨 탄 일행들은 히말라야 조망을 보기 좋은 남부 네팔 Nagarkot로 이색적인 관광을 떠난다. 높은 지대를 이동하는 버스는 곡예 운전을 하며 언덕을 오르는데 지나치는 오토바이들이 더 무섭게 달린다. 꼭 붙어서 달리는 네팔 청년들이 주로 찾는 연애 장소라고 한다.
푸른 들판과 언덕들이 흡사 한국의 늦은 봄 날씨를 연상한다.
네팔은 히말라야로 연상되지만 남쪽 지역 Nagarkot은 상당히 온화한 지역이다. 전망 좋은 예스러운 The Fort Resort에 여장을 풀고 주변 경관을 스케치한다. 고풍스런 숙소는 정원과 건물의 배치가 잘 어울리고 주변 조망과 함께 안락함을 준다.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는데 프랑스인들이 많은 편이었다.
해질녘 전망 탑에는 석양 모습을 촬영하는 사람들로 비좁다. 북쪽으로 랑탕 리륭이 모습을 보이고 수많은 첨봉들이 병풍처럼 카트만두를 에워싸며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준다.
조망 좋은 언덕에서 볼 수 있다는 히말라야 레드마운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뿌연 연무와 흐린 날씨 때문인지 사진으로 보았던 해 지는 히말라야 모습을 감상하기는 부족했다. 그래도 석양의 장관은 볼 수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기다린 시간들은 나름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기다리던 저녁 만찬은 트레킹으로 지친 육신을 회복시키는 성찬이 되었다. 모두들 몇 접시씩 음식을 들며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식사 후 넓은 밤하늘에는 박힌 총총한 별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여행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들로 나그네에게 기쁨을 주는데 미지의 세계에서 천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기쁨이다. 거봉과 첨봉들로 대변되는 히말라야에서 따뜻한 날씨와 조망 좋은 경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되지 않았던 일이다.
해가 뜨는 새벽에 보이는 랑탕 방면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장관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히말라야 동녘에 솟는 붉은 태양의 장관! 그 태양의 광채에 하얀 설산이 노랗게 물드는 대자연의 신비는 또 다른 감동과 기쁨을 준다. 운해가 깔린 어둠의 장막 히말라야의 골짜기에 생명의 혼을 불어 넣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다.
비록 눈이 내려 촐라패스와 고쿄리를 갈 수 없었지만 남부 네팔 Nagarkot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해발 1,975m 언덕에서 만난 히말라야 대자연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우린 네팔을 말할 때 히말라야 고산 지대가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나가르콧과 같은 남부 휴양 촌락이 있는가 하면 포카라와 같은 휴양 도시도 있다. 또한 무스탕 왕국이 현존하고, 밀림 지대에는 많은 열대 우림 동물들이 산다.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를 많이 믿는 네팔인들의 삶은 각양각색의 토속적 전통을 가지며 외부인들을 맞고 있는 것이다.
네팔에 대한 편견을 깨 준 나가르콧의 석양 모습과 일출의 장관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2015.1.22. (목)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7~17도
Nagarkot→카트만두→네팔 최대 힌두사원 파슈파티넛 탐방→예티 앤 아크 호텔 투숙
나가르콧에서 카트만두로 돌아와 타멜 시장을 들러 네팔인들의 생활을 체험한다.
예년에 비해 거리와 시장이 활기차다. 높은 교육열과 근면함 그리고 젊은이가 많은 점이 요인이라고 한다. 아랍과 한국, 말레이시아로 돈벌이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거리에서는 데모하는 모습이 보였고, TV에서도 사회적인 문제로 네팔인들의 이슈인 거리 부랑아 문제로 시끄럽다.
많은 도로 정비와 하수도 공사 그리고 건물 개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카트만두는 여전히 소란스러움과 복잡함 그리고 메케한 공기로 머리가 아프다. 일찍 호텔로 돌아와 맘껏 휴식을 취하며 짐 정리를 한다. 어제 나가르콧에서의 충분한 휴식으로 생기가 돌았지만 카트만두에서의 마지막 밤은 매우 편하게 지나간다. 모두들 한 잔 들며 밤을 맞았지만 썩 좋은 마무리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여운을 즐겼던 카트만두의 저녁은 좋은 추억이었다.
◈ 파슈파티나트 (PASHUPATINATH)
타멜거리와 공항근처에서 북서쪽으로 약 4km 정도를 가면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 파슈파티나트가 나온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보우드넛과 연결하여 여행할 수 있다. 이 사원은 원래 시바 신에게 헌납되었고, 파슈파나트는 시바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이름 중의 하나이다. 파슈(Pashu)는 '생명체'를 뜻하며, 파티는 '존엄한 존재'를 뜻한다.
금빛 사원본당 내부는 힌두교도 외에는 입장이 금지되어 있다.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강가강)에서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경건한 의식을 볼 수 있듯이 네팔에서는 파슈파티나트 사원 앞을 흐르는 바그마티(Baghmati)강에서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러한 광경을 엿볼 수 있다. 바그마티 강둑의 파슈파나트 사원은 네파 힌두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도 전체의 성지이며, 독실한 힌두교도들이 이곳으로 찾아와서 죽고, 화장되어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들은 여기에서 죽고 화장되는 것이 그러한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강둑으로 늘어선 화장터(가트, Ghat)에서는 부모와 형제의 시신을 태우며 통곡하는 가족과 자식들을 열 지어 볼 수 있다. 이곳에서도 촬영은 허용되지만, 멀리서 신경을 거슬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찍는 것이 예의이다.
이번 EBC 트레킹은 다른 때와 달리 힘들고 애로가 컸다. 특히 추위와 고도 적응이 어렵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여 호흡에 불편함이 많았고, 식사도 입맛이 떨어져 애로가 많았다. 세월의 흐름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건조한 고산 날씨에 코는 심하게 헐고 막히는 증세를 유발한다. 그런 이유로 호흡이 더 가쁘고 숨쉬기가 곤란했다.
그래도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칼라파타르 정상에 오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쿰부 히말라야의 핵심 루트를 걸었음에도 기쁨이 크다. 루크라 롯지에서 염소 고기 파티로 노정의 말미를 장식할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늘 힘이 되어 준 아내와 가족들에게도 감사한다.
긴 시간을 산행에 빠져 몰두하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회한의 정과 그리움을 함께 한다.
하늘 아래 한국과 네팔은 너무 멀다. 보금자리 집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프다.
감기로 고생하는 손주 녀석도 보고 싶고 병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도 얼른 뵙고 싶다.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가르침 주신 그 분들이 더 없이 그리워진다.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저미게 한다. 한없이 아름다운 네팔의 자연을 미사어구로 표현한다는 우습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단순함으로 히말라야와 네팔을 읊조릴 뿐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힌두교도를 비롯하여, 북부 네팔과 티벳의 바즈라야나 불교신자들과 네와르 족 불교신자들이 있다. 매일 아침 해뜨기 전에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언덕으로 통하는 365개의 계단을 오른다. 일렬로 금박을 한 바즈라(Vajra, 티벳어로 Dorje)를 지나 입구를 지키는 2개의 사자상을 지나서 시계방향으로 사리탑을 돌기 시작한다.
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을 준비하고 짐을 부친다. 하얀 천을 목에 둘러 주는 머누 구룽을 힘차게 껴안으며 그간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나눈다.
모두들 긴 일정으로 피곤하지만 이번 여행이 잘 마무리된 것에 감사함으로 표시한다.
긴 기다림의 카트만두 공항은 복잡하고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지만 트레커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이다.
◈ 보우드넛 (BODHNATH)
카트만두 시내 동쪽 약 7km지점에 네팔 최대의 스투파가 있는 보우드넛 일대는 예로부터 티벳 불교인의 주요 순례지다.
티벳이 중국에 무력 합병된 후에는 티벳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스투파의 기원에 관해서는 티벳인과 네와르족 불교인들이 각각 다른 전설을 갖고 있지만 현존하는 스투파는 15세기 이슬람교도들에 파괴된 후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예전 카트만두와 라사를 잇는 히말라야 교역이 성행했을 때에 티벳 상인과 순례자들은 이곳에 들러 무사히 히말라야를 넘은 것을 감사하며 귀로의 안전을 빌었다고 한다.
네팔에서 가장 큰 이 스투파는 만다라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다. 4층의 대좌는 땅, 반원형의 돔은 물, 사방을 응시하는 눈과 13층의 첨탑은 불, 그 위의 둥그런 우산 모양은 바람, 뾰족한 작은 첨탑은 하늘로 ,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에너지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스투파는 부처의 깨달음과 불교의 본질을 대좌=명상, 돔=모든 번뇌에서 해방되는 무의 경지, 눈이 그려진 탑=열반에 이르기까지 13개의 계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돔 아래 108곳의 움푹 팬 부분에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맨 아래층의 토대의 벽은 모두 147면이며 각 면에는 4개 또는 5개의 마니차가 있으며 모두 ‘옴마니 반메홈’이라는 진언이 새겨져 있다.
불자들은 이 마니차를 하나하나 돌리며 진언을 외는데 반드시 시계 방향으로만 돈다. 스투파 북쪽에는 사원이 있고, 3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마니차가 두개나 있다. 이 마니차를 돌리면 종이 울리도록 되어있어 주변에는 늘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보우드넛은 자연의 기운이 가득한 장소에 세워진 성지라고 한다.
2015.1.23. (금) 날씨 : 흐린 후 갬 기온 : 섭씨 8~18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도시 안이 온통 미술관이자 네와르족의 고도인 미의 도시 파탄 왕국을 관람하였다(덜발 광장, 옛 왕궁). 파탄 왕궁으로 가는 길은 온통 오토바이와 수많은 인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복잡하다. 많은 외국인들이 찾은 파탄 왕궁은 힌두교와 티벳 불교가 혼합된 공간으로 문화의 다양함을 보여 준다.
보우드 넛(티벳 불교 순례지) 관광 후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오후에 카트만두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부처의 눈이 시내를 내려다보이는 몽키 템플 스와이 얌부넛을 관람했다. 초르텐과 많은 불탑들이 예전 모습을 보여 주며 카트만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조망이 좋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는 사원은 원숭이들의 천국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밥을 나누어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사원 곳곳에서는 젊은 네팔 청년들이 연애를 속삭인다.
200만 명이 산다는 카트만두는 분지 모양의 대도시였는데 의외로 도시의 규모가 크다. 타멜 시장에서 간단한 쇼핑 후 인도 현지식 저녁 식사를 들고 일찍 공항으로 이동하여 귀국을 준비한다.
? 러리트푸르(미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네와르족의 고도 파탄(Patan)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며 멀러 3왕국 시대의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카트만두 분지에 도시 문명을 세운 네와르 족이 많이 살고 있으며, 예부터 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성스런 강 버그머티를 마주하고 있는 고도이다. 덜발 광장에는 아름다운 사원과 건축물들이 즐비하여 옛 흔적을 볼 수 있다. 목 조각과 탕카(불교화)를 제작하는 공방도 많다.
또한 오랜 불교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곳은 시내 외곽의 사방에 기원전 3세기에 아쇼카 왕이 세웠다는 스투파가 남아 있다. 파탄은 ‘미의 도시’라는 뜻인 “랄리트푸르”라고 하며 도시 안이 온통 미술관 같다. 기원전부터 살아온 네와르족은 조각, 회화 등 예술에 뛰어나 공예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 스와얌부나트 (SWAYAMBHUNATH)
성질 못된 원숭이가 살고 있는 원숭이 사원이다.
나무로 울창한 숲을 뚫고 원뿔형 지붕을 이룬 황금 탑이 솟아오른 스완부트나트 스투파(사리탑)은 카트만두 밸리에 모셔진 모든 사원들 중에서도 고풍적이고, 불가사의한 탑이다.
우뚝 솟은 하얀 돔과 번쩍이는 황금빛 첨탑은 계곡의 어디에서나 멀리서도 잘 보인다.
석주의 비문에 새겨진 역사적 기록들은 5세기경에 이미 불교 주요 순례지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원래의 기원은 부처가 이곳 카트만두 밸리에 오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 대한 각종 전설의 수집품들(15세기의 Swayambhu Purana)은 과거 부처에 의해 심겨져 카트만두 밸리를 뒤덮고 있었던 호수에서 피어난 기적의 연꽃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연꽃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었고 그리하여 이곳의 이름은 '스스로 창조된' 또는 '스스로 존재하는'을 뜻하는 스와얌부(Swayambhu)가 되었다.
# 네팔이라는 이름의 유래
네팔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정확한 유래가 없고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아대책기구의 문광진씨가 카트만두 한인신문에 기고한 것을 인용해 본다.
첫째, 티벳어로 ‘Ne’는 ‘Home’이고 ‘pal’은 ‘Wool’이다. 그래서 네팔은 ‘양모의 집’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이 나라의 북부 지방에서 양과 염소로부터 만들어지는 양모가 풍부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둘째, ‘Ne’라는 현자(賢者)의 이름(파슈파티나트에서 나온 현자의 이름)으로 네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카트만두 밸리의 버그마티 강과 비슈누 강의 교차점에서 고행을 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네팔의 수호성인이기도 했다.
셋째, 어떤 사람은 네팔이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름이 주어졌다고 한다. 네와르어로 ‘ne’는 ‘center’이고 ‘pa’는 ‘country’라는 뜻이다. 그래서 ‘nepa’는 중앙에 위치한 나라라는 뜻이다.
넷째, 어떤 중국인이 이 나라를 보고 ‘Ni-polo‘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부터 ’네팔‘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다섯째, 아주 오래전 이 나라를 Gopal 왕조의 왕이 다스렷다. 그들은 ‘Nepa’로 불렀다. 그래서 이 나라가 네팔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설이다.
여섯째, Gandaki Mahatmya에 의하면 이 나라는 ‘Nepa’라고 하는 위대한 왕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그는 이 나라를 ‘Nepal’로 불렀다.
일곱째, 어떤 이는 ‘Newar’라는 이름에서 ‘Nepal’이 나왔다고 한다. 네와르는 수백 년 동안 카트만두 밸리에 살던 원주민이다.
여덟째, Lepcha어로 ‘ne’는 ‘sacred-성스러운’ 그리고 ‘pal’은 ‘cave-동굴’. 그래서 ‘성스러운 동굴, 장소’ 네팔은 힌두와 불교 순레자들에 의해 방분 되어지는 종교적인 하나의 거룩한 장소이기에 이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아홉째, Thomas Young과 Geoge Grihars에 의하면 Nyarva라는 뿌리로부터 ‘Newar’가 나오고, ‘Newar’에서 Nepal’이 나왔다는 설이다.
아직도 네팔하면 카트만두라고 네팔 사람들조차 생각한다. 네팔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종족이 서로 연합하여 아름다운 네팔로 변화되어지기를 모든 사람들은 바란다.
카트만두 10:15 출발 → 광저우(02:15) 도착
015.1.24. (토) 날씨 : 맑음
광저우 공항에서 3시간 대기 후 탑승. 현지시간 09:10 출발
인천공항 13시 30분 도착
14시 40분 버스→대전 17:00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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