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기<3>최병원의 <청산별곡>
북유럽 대자연의 신비 피오르드를 찾아서
2015. 7. 26
시차 때문인지 새벽 4시경이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고 만다. 트레킹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짐을 챙기거나 준비할 것이 많지 않아 주변 산책에 나선다. 숙소 근처에 마트 이외에는 별로 마을이 작으려니 했는데 걷다보니 의외로 크다.
잘 꾸며진 정원과 마을을 연결한 도로들이 잘 정비되어 있고, 집집마다 자가용과 캠핑카 그리고 겨울에 대비한 주택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아기자기하다. 현관에는 작지만 전등을 켜 놓았는데 예전 조상들이 길을 잃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이정표 역할을 하도록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30분 정도 걸으니 학교 건물이 나타나고 뒤편으로 엄청난 3단 폭포가 장관이다. 약간의 빗방울을 맞으며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며 주민들이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그리고 정원을 추위로부터 보호할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침식사 후 서둘러 송네 피오르드 페리 탑승을 위하여 호텔을 떠나는데 터널 근처에서 일행 중 카메라를 숙소에 놓고 왔다는 소동이 일어났다. 기사에게 부탁했지만 페리 탑승 시간에 맞출 수 없다며 그냥 지나친다. 아쉬움을 갖고 부두로 갔는데 소동의 마무리는 호수 산장에 도착하여 박장대소로 해프닝이 되었다.
피얼란드 도로를 거쳐 페리에 탑승하여 세계에서 가장 깊고 긴 송네 피오르드 페리에 탑승하여 노르웨이 대자연의 신비에 빠져든다. 먹구름과 뭉게구름이 잔잔한 피오르드에 비추어 어두운 광경을 보이지만 지나치는 뱃전에 어리는 피오르드는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30분 정도의 페리 탑승 후 건너편 부두에 닿았는데 양쪽에서 두 대의 페리가 교대로 버스와 자동차를 건너게 하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 몇 개의 마을과 피오르드를 거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요스테달 빙하와 뵈이야 빙하를 보기 위하여 한참을 달렸다. 버스 앞에 앉아 주변 경관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골짜기마다 피오르드의 일부가 호수처럼 산재하고 있는데 넓은 벌판에는 간간이 마을과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데 가축을 기르기 위해 집들이 대부분 크게 지었다.
건물들 중에는 염소나 양을 관리하기 위한 대피소 역할을 하는 집들이 군데군데 산재해 있다. 피오르드에 비치는 하얀 설산과 마을 그리고 초원의 풍경이 신비감을 준다.
1시간가량을 달려 노르스크 빙하 박물관에 도착하여 요스테달 빙하와 봐이야 빙하를 바라보고 내부에 전시된 각종 자료들을 보며 빙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대형 멀티 화면을 통하여 노르웨이 빙하를 보게 된 것은 감동적이었다. 노르웨이가 빙하를 통하여 많은 관광 자원들을 개발하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했다.
빙하 박물관을 떠난 버스는 한참 북쪽에 위치한 노스 피오르드(North fjord)를 향하여 달린다.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피오르드를 빙 돌아 달리는 여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자연친화적인 터널을 지나고 협곡을 거쳐 피오르드 주변 마을을 지나는 여정은 흡사 알프스 지역을 달리는 착각에 빠진다.
노르웨이는 토지가 동토의 표면에 얇게 덮여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원유와 수산업 그리고 약간의 낙농업이 주요 산업인데 1인당 GDP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곳곳에 부유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이 피오르드에 어려 부럽기만 하다.
묄라(Mølla) 지역에는 대형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데 수심이 수천 미터로 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설산 봉우리와 해변이 만나는 곳에 캠핑카들이 여러 대 야영하고 있는데 삼거리에서 경찰이 음주 단속을 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낮에도 캠핑장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서 단속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벌칙이 엄하다고 하는데 무척 특이한 광경이었다.
침엽수림과 넓은 초원 그리고 구부러진 길을 지나니 오늘의 하이라이트 게이랑에르에 도착한다. 산등성이에는 잔설이 하얗고 피어오르는 주변 풍광을 담아서 검고 깊어 보인다.
게이랑에르(Geiranger)는 노르웨이의 뫼레오그 롬스달(Møre og Romsdal) 주에 있는 마을로 45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산다. 노르웨이 서부의 작은 관광 마을로 2005년부터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는 게이랑에르 피오르드(Geirangerfjord)의 끝 부분에 위치한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 포함되어 있는 7자매 폭포(Seven Sisters Waterfall, Norway)가 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축물은 1842년에 지어진 게이랑에르 교회이다.
이곳에는 노르웨이의 3대 크루즈 선박 항구가 있어 여행 성수기인 4개월(5월~8월) 동안 많은 선박과 크루즈 여행객이 이 마을을 방문한다. 매년 6월에는 '게이랑에르-피오르드에서 정상까지(Geiranger–From Fjord to Summit)라는 행사가 이곳에서 개최된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헬레쉘트까지 페리 유람선에 탑승하여 대자연의 장관인 피오르드의 속살에 묻힌다. 갑판 위에는 흡사 어린아이처럼 들뜬 모습의 관광 인파가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갈매기와 주변 경관에 빠져 환호한다.
피오르드는 ‘내륙 깊이 들어와 있는 만’을 뜻하는데 빙하가 만들어 낸 깊은 협곡은 우리가 전혀 보지 못했던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1,500m가 넘는 산들이 피오르드를 둘러싸고 있는 게이랑에르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데 길이가 16km에 이른다고 한다. 하얀 수를 놓은 듯 뽀얀 포말을 쏟아내는 수많은 폭포들이 유람선 양쪽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헬레쉘트 쪽에서 오는 유람선이 지나 무렵 대자연의 신비인 절벽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로 7자매 폭포와의 만남이다. 엄청난 빙하수를 피오르드로 퍼붓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에 벅차다. 흐렸던 날씨도 개인 덕분에 7자매 폭포의 위용과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일행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빙하가 녹아 만든 7개의 폭포들은 엄청난 수량을 피오르드에 쏟아 붓는다.
7자매 폭포(Seven Sisters Waterfall, Norway)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옛날 세끼를 술로 먹을 만큼 술을 좋아하는 일곱 자매가 살았는데 건너편 언덕에 살던 총각이 아름다운 7자매에 반해 모두에게 차례로 구혼했는데 술밖에 관심이 없던 7자매는 모두 거절하여 총각이 시름시름 앓다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죽어서도 7자매를 잊지 못한 총각은 와인병과 같은 술병 모양의 폭포로 변하였다고 하는데 맞은편의 구혼자 폭포도 뽀얀 포말을 휘날리며 아름답다.
7자매 폭포 반대편을 바라보면 큰 바위형상을 한 절벽이 보이고 인적이 있는데 예전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으며 지금도 산책길과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는 염수가 포함되어 있어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에는 버려진 농장들이 산비탈에 매달려 지나는 유람선을 반긴다. 지그재그 길을 따라 도로가 보이는데 게이랑에르 전망대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게이랑에르는 과거에는 물길로도 육로와 닿지 않아 은둔의 땅이었는데 1869년 영국의 조난선이 처음 이곳을 발견하고 닻을 내렸다고 하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인구가 230명 정도였다고 한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참맛은 페리 유람선을 하선하여 헬레쉘트 마을 전망대에서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한다. 낭떠러지 꼬불거리는 길을 따라 한참 오르면 피오르드의 전경이 조망되는 곳이 있는데 노르웨이 피오르드를 소개하는 사진에 등장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트롤스티겐 로드 즉 요정의 길, 혹은 골든 루트라고 하는 비탈길은 요정이 사는 곳이라고 전해지며 붙여진 이름이다.
일행들 모두 차에서 내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정신이 없다. 수면을 가르는 배들이 등장하여 더욱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버스 기사의 곡예 운전을 방불케 하는 트롤스티겐 로드 넘기는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이다.
산정에 오르니 큰 호수와 주변 잔설들이 겨울이 다시 온 느낌이다. 호수에는 덜 녹은 얼음들이 눈을 이고 하얀 산정 호수를 만들었다. 이 호수의 이름은 듀프호수(Djupvatnet)인데 유역 변경식 수력발전소를 만들었고, 오따강의 원류가 된다.
14세기에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을 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때 이 지방에는 전체 마을 사람 중에 다 죽고 여덟 명 만 살아 남았는데 노르웨이어로 숫자 여덟인 ‘오따’를 지명으로 사용한다.
오따강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롬 마을에 잠시 쉬어 목조교회를 보게 된다. 이곳 마을 지붕은 검은 색을 띄는데 지붕과 나무 벽에 송진을 발라 시간이 지나면 검은색을 나타내며, 붉은색이 되는 것은 진흙에 송진을 섞어 발라 놓으면 붉은색 건물이 된다고 한다.
12세기 초반의 중세 바이킹시대에 지어진 목조교회(Stave Church)이다. 노르웨이 중서부의 브레헤이멘 국립공원(Breheimen National Park)의 동쪽을 흐르는 구드브란스달슬로겐(Gudbrandsdalslågen)강의 중류지역에 있다. 본래 로마 가톨릭 교회로 지어졌으나, 16세기 노르웨이의 종교 개혁 이후부터는 루터파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노르웨이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11세기 이후 건축된 1,000여 개의 목조교회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28개 교회 중 하나이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크고 작은 목재들만을 견고하게 짜 맞춘 스칸디나비아 전통의 목재 건축술로 지어졌다. 1980년대에 진행된 고고학 유물조사에서 발견된 비석과 동전 등의 연대를 추정해 볼 때 1158년에서 1159년 사이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직사각형 구조의 단층 건물로 지어졌으나, 1634년 베르너 올젠 스쿠르달(Werner Olsen Skurdal)에 의해 재건축되면서 십자형 구조로 확장되었고, 높고 뾰족한 첨탑이 세워졌다. 건축 초기에 만들어진 20여 개의 기둥과 지붕의 통널 목재, 그리고 용머리 모양의 지붕 장식 등을 제외한 가구 및 실내장식의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외부에는 지붕의 모서리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민속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용머리 모양의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출입구와 목재기둥에는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교회 내부는 이 지역의 조각가인 자콥 새테르달렌(Jakop Sæterdalen)이 만든 나무 조각 작품과 화가 에게르트 뭉크(Eggert Munch)가 그린 종교 회화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오슬로에서 북서쪽으로 약 340km 떨어져 있다.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는 북극과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는 나라로 자연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늦은 편이었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것도 10세기 이후부터 이었으며 그 영향을 받아 12세기부터 성당 건축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목재를 사용하여 깎아지른 모양의 외벽을 한 동양적 성당들이 우르네스와 부르군트, 롬 지방에 세워졌다. 13세기에는 영국 건축의 영향으로 스타방에르 대성당, 트론헤임 대성당이 세워졌고, 1261년에 지어진 베르겐 지방의 호콘 왕을 위한 건물이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롬 목조교회는 껍질을 제거한 목질이 단단한 나무로 지었으며 이곳 산에서 출토되는 검은 돌을 페인트로 섞어 독특한 색깔을 나타내고 있다. 스타브 교회는 소박하고 단순한 외관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성당이라고 불렸다. 용머리로 지붕을 장식했는데 바이킹이 악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액막이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교회는 예배와 세례를 받고 결혼도 하지만 죽으면 매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목사는 국가직 공무원이며 세금으로 종교세를 받는다고 한다.
<빈스트라 이동하여 호수 산장에서 낭만적인 밤을 보내고>
가을이 가고 또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오고 여름이 오고
그래도 나는 기다리노라.
어느 날엔가는 기어이 돌아올 그대 위해
언제까지나 기다리라던 맹세를 지키며.
페르귄트는 쇠도르프의 농장에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입센은 1867년 <페르귄트>의 원고와 함께 그가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페르귄트가 실제로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귀하는 흥미로울 것이다. 그는 구드브란스달에 지난 세기 말이나 금세기 초에 살았으나 아스비오른슨의 <노르웨이 민화집>에 나오는 것 외에 그의 일생에 관해 알려진 것이 없다”라고 썼다.
허풍쟁이에다 레이디 킬러의 위험한 매력이 있는 사나이다운 성격은 입센의 <페르귄트>와 일치하지만 페르귄트 호고 농장의 주인은 직품에서처럼 세계를 여행하지도 않았고 평생 독신이기는 했지만 솔베이지라는 애인은 없었다. 솔베이지는 입센이 창작한 여인이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시극(詩劇) <페르 귄트>는 <솔베이지의 노래>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노르웨이의 국민정신과 노르웨이의 자연을 가장 잘 그렸다는 <페르귄트>는 입센의 의뢰에 따라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가 부수(附隨) 음악을 작곡해 더욱 널리 알려졌고, 애창되는 <솔베이지의 노래>는 구드브란스달 산골의 오막살이에서 솔베이지가 페르귄트를 기다리며 애절히 부르는 비곡(悲曲)이다.
빈스트라 고원 빙하 호수 산장(Fefor Hovfjells Hotel)은 자작나무 숲속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버스가 산 중턱을 오르며 입센의 사극 페르퀸트 낭송을 들으며 도착했다. 짐을 내리며 모두들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아침 출발 때 잃어 버렸던 카메라는 가방 손잡이에 매달려 미리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당황스런 모습이었지만 얼마나 다행스런 해프닝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산정호수는 흡사 영화 ‘닥터 지바고’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한 겨울이었다면 그런 장면이 무척 어울릴 것 같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일행들은 이곳 지방 생맥주를 들으며 멋진 만찬을 즐긴다. 날씨만 좋다면 별이 무수히 쏟아질 것 같은 낭만의 빈스트라 고원 산장의 밤이 너무 좋다.
<일정>
7월 26일 (일) 래르달 출발 08:00 노르스크 빙하 박물관 도착 09:20
게이랑에르 도착 12:20 헬레쉘트 마을 도착 13:50
롬 목조교회 도착 16:50 빈스트라 산장 도착 18:30
FEFOR HOIFJELL 산장 투숙
<저작권자 © 레이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유혜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병원의 <청산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유럽 여행기<5> (0) | 2015.11.23 |
---|---|
북유럽 여행기<4> (0) | 2015.11.23 |
북유럽 여행기<2>-최병원과 함께 떠나는 (0) | 2015.11.23 |
북유럽 여행기<1> -최병원과 함께 떠나는 (0) | 2015.11.23 |
최병원과 함께 떠나는 에베레스트 트레킹<7> (0) | 201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