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친구의 남편자랑

레이디타임즈 2012. 10. 6. 07:42

생각 만해도 행복한 장소와 사람이 있다면 인생을 헛되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난 참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첫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 청원군에 위치한 작은 읍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남편이 사업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가게 된 곳이 내수라는 작은 동네였다. 


‘내수’란 곳은 생각만 해도 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장소였고 그 곳에서 만난 순자는 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도시생활에만 익숙했던 내게 그 곳의 첫인상은 막막함과 여유로움의 중간쯤의 감정이랄까! 


이삿짐을 풀고 둥지를 튼  빌라 주변은 온통 숲과 밭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막막함은 소멸되고 여유로움에 푸근함까지 보태져 난 그 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선뜻 말을 붙여주는 어디선가 본 듯한 동네 사람들,  저녁이면 검은 휘장을 둘러놓은 듯이 깜깜한 밤, 아득히 뉘 집 개 짓는 소리, 창으로 밀려드는 달빛, 또 그 많은 별들의 총총함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나 아카시아 향기 짙어지는 초여름 밤에 소쩍~ 소쩍~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에 난 그만 매혹되고 말았다.


 숲 속에 지어진 동화 속에서 등장할 듯한 예쁜 유치원 건물. 그 예쁜 건물에 마음을 뺏겨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잊은 채, 선뜻 아이를 입학시킬 만큼 그곳은 재고 따지는 나의 성격조차 무디게 만들었다. 그러나 번거로울 줄 알았던 아이의 유치원 가는 길은 아침을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이 되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가는 숲길에서 순자를 만난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딸 아이와 그녀의 아들이 동갑인 것도 그녀와 내가 동갑내기라는 것도 서로를 자꾸 끌리게 했다. 그 만남 이후, 대전으로 이사 온 지금까지 우리의 마음과 추억은 전화를 통해 오가고 있다.
 내가 5년을 내수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도박에 빠져 마음을 잡지 못해 떠도는 남편 때문에 가슴앓이를 참 많이도 했다. 


‘나 정말 못살겠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절망적인 그녀의 목소리를 이 곳 대전으로 이사 온지 한참이 지나서도 들어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그렇게 속 썩이던 남편이 이젠 정신을 차린 것 같다는 반가운 전화를 했다. ‘손발 잘라도 고칠 수 없다는 병이 도박’이라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말인가 보다.


 “글쎄 생전 옷 한 벌 사주지 않던 사람이 바지를 사다 주더라, 그것도 맘에 딱 드는 걸로…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면서 그 동안 미안했다고 막 울더라…” 


하지만 속상하게도 그녀의 남편 자랑은 계속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을 다섯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그 친구의 남편자랑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누군가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고 한다면 첫 번째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고 두 번째로 내 몸의 닭살이 돋도록 그녀의 남편 자랑이 계속,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 자랑에 섞여 달빛, 별빛, 소쩍새 소리 등, 정겨운 내수의 소식도 들려올 테니까…

'어느날 문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의 온도  (0) 2012.10.06
가면놀이는 끝났다  (0) 2012.10.06
산책하는 여자  (0) 2012.10.06
카르페디엠  (0) 2012.10.06
기다림이여 영원하라  (0) 201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