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가면놀이는 끝났다

레이디타임즈 2012. 10. 6. 07:47

닥종이 공예가 김영희 작가가 몇 년 전, 대전에서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란 그녀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녀를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화랑으로 달려갔다. 


작품들을 둘러보다 유독 내 마음을 당기는 인형이 있었다. 제목이 <자화상>이다. 앞니가 벌어진 어눌하고 시골틱한 여자가 한 손에 베르사체 패션쇼에서나 나올법한 도도하고 세련된 가면을 한 손에 벗어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인형이었다.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그 인형은 바로 나의 자화상이었다.


 기자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많은 만남들 속에서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예의바른 태도를 가장한 오만함으로 ‘너는 별거 아니야’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오만방자함과 맞서기엔 역부족인 내 본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지닌 가장 도도해 보이는 가면을 꺼내 쓴다. 


자화상이란 인형을 보는 순간, 그 도도한 가면을 썼던 순간들이 오버랩 되며 ‘참 못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전시회장을 빠져 나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면의 수는 얼마나 되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면을 벗고 ‘내 어눌한 본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줘도 되는 사람들은 내 주위엔 얼마나 있는 걸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지위가 높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스타일이 좋은 사람 등등. 하지만 언제나 나의 마음을 당기는 사람들은 가면을 벗어던진 진실 된 얼굴로 다가오는 인간적인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했다. 이런 사람들에겐 내 본래의 어눌한 모습을 보여줘도 얕보거나 이용하려들지 않았다는 생각들이 밀려왔다. 


내 나이 오십이다. 이젠 나를 거추장스럽게 했던 가면들일랑 훌훌 벗어 던지고  내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입속에 혀처럼 살갑게 굴지 못해 상냥하다는 칭찬은 듣지 못해도 좋다. 하지만 <그 사람 진솔한 사람>이라는 한마디는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가면놀이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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