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안녕하세요 9층~

레이디타임즈 2012. 10. 6. 08:04

작은 딸에 이어 남편도 출근을 한 후 흐트러진 집안을 대충 정돈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13층에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에 누가 탑승하는지 내가 서 있는 9층까지 소란함이 전해진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9층”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처음보는 꼬마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 13층” 얼떨결에 나도 꼬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떨결’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탑승을 해 보았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들 동안 그 꼬마의 인사만큼 신선한 인사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정말 신선했다. 

그 날은 일을 하면서도 짬짬히 그 꼬마의 ‘안녕하세요 9층’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떨결이지만 ‘안녕 13층’이라고 재치(?)있게 인사말을 건넨 내 자신이 맘에 들어 종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때론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에서 나오는 언어가 어른들의 언어보다 더 정확하고 정겹게 다가올 때가 있다.어른들의 언어는 자칫 왜곡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로 인해 오해가 생겨 관계조차 깨지는 경우도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 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혹시나 그 꼬마가 타고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 날도 그 꼬마를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대하던 그 꼬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관리소에서 붙여놓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으뜸 아파트인상’이란 제목의 문구였다.

1.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하기 2. 먼저 보고 웃으면서 인사하기 3. 분리수거 잘 배출하기 4. 계단, 통로, 현관 앞에 물건 내놓지 않기 5. 단지 내에 담배꽁초 안버리기 6. 밤늦게 청소기, 세탁기 사용 안하기 7. 주차질서 잘 지키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기 8. 이웃사촌과 따뜻한 정 나누기 등등. 

그 문구들을 동그라미(O), 엑스(X)로 체크하며 읽어 내려갔다. 1번, 3번, 4번, 5번, 7번 등은 동그라미, 2번, 6번, 8번 등은  엑스다. 8개 중에 3개가 엑스니 ‘으뜸 아파트인상’에선 재고말고 할 것도 없이 ‘탈락’이다.

특히 엑스(X)라고 표기한 2번은 그 꼬마로 인해 더욱 반성이 되었다. <먼저 보고 웃으면서 인사하기>란 2번을 지킬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내게 먼저 인사하지 않는데 내가 왜 먼저 인사를 해야 되나'란 <교만함>이 그 하나다. 그 둘은, 아침이면 집을 나섰다가 저녁이면 돌아오는 나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먼저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리화>다. 냉정한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교만과 합리화라고 평소 생각했던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많은  반성을 했다. 
다음날 아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9층”

아뿔싸! 그 꼬마였다. 

“안녕, 13층” 

 먼저 인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꼬마의 인사말은 내 기분을 Up 시켜준다. 앞으로도 수많은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해도 ‘안녕하세요 9층’이라고 먼저 인사말을 건네 줄 사람은 절대 없을 테니까 말이다. 

1층에 당도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 꼬마는 날쌘돌이처럼 튀어나간다.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 꼬마의 뒷모습을 보며 종종 아이들의 언어코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9층’
 
얼마나 신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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