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의 공원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파란 잔디 위로 까만 연미복 차림의 까치만이 강종거리는 이 공원의 한적함을 난 사랑한다. 눈가의 주름을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나이.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서둘러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사내아이의 길어진 머릴 깎듯 잘 깎여진 잔디의 풀내음은 동심으로 나를 이끈다. 어린 시절, 천둥벌거숭이 되어 앞산 숲에서 숨바꼭질 참 많이도 했었다. 녹음 짙던 그 숲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었었다. 주근깨가 송송 박힌 홍시빛 꽃잎 위로 밤색 꽃술이 대롱대던 나리꽃들. 그 향기가 좋아 꽃 속에 코를 박고 숨 막히도록 향기를 맡았었다. 나리꽃의 밤색 꽃가루 때문에 바둑이 코가 된 나를 보고 배꼽 빠지게 웃던 소꿉동무들의..